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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선에 상륙한 댄스뮤직…'꽁꽁타령'과 춤춰봐요

입력 2026-02-15 07:00   수정 2026-02-15 07:09

지금은 그렇게 특별한 말이 아니지만, 오늘날처럼 영어가 넘쳐나지 않았던 1930년대에도 ‘댄스뮤직’이라는 표현은 의외로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일상에 정착한 말은 아직 아니었으나, 적지 않은 당시 SP 음반 자료나 광고에서 댄스뮤직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대략 90여 년 전인 1930년대 초반부터 음반으로 발매된 댄스뮤직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음악과 어떤 춤이었을까?

댄스뮤직 음반의 첫 사례는 1932년 8월 말에 시에론(Chieron) 레코드에서 발매된 <신아리랑>과 <캬라방(Karavan)>이다. <신아리랑>은 1926년 개봉 영화 주제가 <아리랑>을 편곡한 것이고, <캬라방>은 1930년 전후 일본과 조선에서 인기가 많았던 1919년 발표 미국 노래다. 두 곡 모두 가창 없이 연주만으로 녹음되었는데, 곡목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 연주를 맡은 악단이다.




음반 딱지와 광고에 ‘무란루주’, ‘후로리다’ 등 표기로 소개된 악단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프랑스 출신 악사들이었다. 파리의 명물 카바레 물랑루즈(Moulin Rouge)에서 연주하던 이들이 도쿄로 건너와 유명 댄스홀 플로리다(フロリダ)에서도 음악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만으로도 이미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나아가 그들이 조선 청중을 겨냥해 음반 녹음까지 한 것은 더욱 이례적이었다.



악단장 제라르(Jean Gerard)를 비롯한 프랑스 악사들은 시에론 레코드에 이어 몇 달 뒤 콜럼비아(Columbia) 레코드에서도 조선 유행가 <방랑가>와 <오동나무>를 댄스뮤직으로 녹음했다. 그러한 곡들 제목 아래에서는 왈츠(<신아리랑>과 <방랑가>), 폭스트로트(<캬라방>과 <오동나무>) 같은 표기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곡의 리듬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 선율에 맞춰 추는 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왈츠와 폭스트로트는 지금도 댄스스포츠 모던 부문 다섯 종목 중 일부다.



안무를 따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서양식 사교춤을 추는 데 적당하도록 연주를 한 댄스뮤직이었던 셈인데, <신아리랑>만은 음반 발매 이후 춤사위가 별도로 만들어졌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시에론 레코드 1933년 5월 월보(月報)에 실린 ‘아리랑 댄스곡!의 무용화(化)’라는 기사에 의하면, <신아리랑> 곡조에 맞춰 출 수 있도록 무용가 조택원(趙澤元)이 안무한 춤을 배우 최승이(崔承伊)가 무대에서 선보였던 듯하다. 이름 때문에 종종 혼동되기도 하지만, 최승이는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조택원의 <신아리랑> 춤 동작이 만약 구체적인 자료로 전해졌다면 근대 무용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간주되었을 법도 하나, 초기 근대 무용 작품 상당수가 그러하듯, <신아리랑> 춤 역시 무보(舞譜) 같은 관련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무보를 기준으로 한다면 1930년대 댄스뮤직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은 따로 있으니, 바로 1935년 4월에 음반이 발매된 <꽁꽁타령>이다.



<꽁꽁타령>은 사실 댄스뮤직으로 표기되었던 곡은 아니다. 음반이나 가사지, 광고 등 어느 자료를 보아도 평범하게 ‘신민요’라고만 되어 있다. 여느 신민요처럼 조선 악기와 서양 악기의 협연, 이른바 ‘선양(鮮洋)합주’로 연주된 <꽁꽁타령>이 그 어떤 신민요와도 달랐던 점은 ‘무용 방식 첨부’에 있었다. 실제로 <꽁꽁타령> 가사지에는 그 곡조에 맞춰 어떻게 춤을 출 수 있는지를 그림과 설명으로 상세하게 소개한 무보가 노래 가사와 함께 있다.

<꽁꽁타령>의 춤은 스무 가지 동작을 순서대로 진행한 뒤 다시 반복하는 방식으로, 노래의 어느 구절에서든 시작할 수 있다. 아무래도 대중가요를 위한 춤인 만큼, 누구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까다롭지 않게 구성되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혼종적 음악인 신민요의 반주에서 보이는 조선과 서양의 협연이 춤에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보 그림의 모델은 양복을 입은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두 팔을 번갈아들어 올리는 어깻짓 춤사위는 다분히 조선의 느낌을 준다.



춤추는 방식을 기록한 무보는 일찍이 조선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근대 대중가요와 관련 있는 무보로 확인된 바는 지금까지 <꽁꽁타령>이 유일하다. 그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보이지 않으니, 최소한 SP 음반에서는 <꽁꽁타령> 무보의 춤이 그야말로 전무후무유일무(前無後無唯一舞)라 할 수 있다.

전통 무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 <꽁꽁타령>의 무보는, 그러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던 것일까? 인간사 모든 일들이 하늘에서 그냥 툭 떨어지듯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진 않는 법. <꽁꽁타령> 무보 또한 필시 참고하고 영향받은 어떤 것이 있었을 텐데, 그 영향의 출처는 아무래도 일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1933~34년 일본에서 대유행을 기록했던 ‘온도(音頭)’였다.

일본 신민요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온도는 1933년 7월에 발매된 <도쿄 온도(東京音頭)>가 크게 히트하면서 일대 붐을 일으켰고, 1934년 봄에는 여러 음반 회사가 같은 제목으로 각기 다른 <사쿠라 온도(さくら音頭)>를 제작해서 한 판 경쟁을 펼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쿄 온도>는 2021년 8월 도쿄 올림픽 폐막식에서 연주되었던 곡이기도 하다. <도쿄 온도>나 <사쿠라 온도> 같은 노래의 가사지에는 그림으로 설명한 ‘후리쓰케(振付け)’, 즉 안무가 수록되어 있었으니, <꽁꽁타령> 무보와 매우 유사한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올림픽 무대에도 등장한 <도쿄 온도>와 달리, <꽁꽁타령>은 그저 노랫말 표현이 재미있는 신민요로 이제 몇몇 사람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옛날 ‘대중무용’의 구체상을 알려 주는 자료로서 <꽁공타령>은 다른 예를 찾을 수 없는 희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가치를 좀 더 밝혀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요즘도 어쩌다 한 번씩 <꽁꽁타령> 무보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아쉽게도 몸이 잘 따르지 않으니, 완전한 춤 습득까진 시간이 제법 걸릴 듯하다.

이준희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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