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黃東奎, 1938~)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시인 지망생을 자처하며 국문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이러저러한 시인들의 작품을 섭렵하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외우는 버릇을 들일 무렵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내 시심(詩心)을 자극하며 다가온 작품이 바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그리고 유치환 시인의 「생명의 서(書)」였다.
어린 마음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로 시작하는 「즐거운 편지」는 제목과 달리 누군가 절절한 짝사랑을 호소하는 듯한 연서(戀書) 같은 느낌이 들어 단숨에 외워버렸고,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리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로 시작하는 「생명의 서」는 그 뜻을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비장하면서도 현학적인, 그래서 말 그대로 ‘있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몽땅 외우기로 작정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40년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이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애송시로 남아 있다. 다만, 그때 내 현실은 누군가에게 ‘즐거운 편지’를 쓸 만한 것이 아니었다.
빈곤한 가정 형편 때문에 장남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진학에의 부채감(負債感), 대학 전공 선택에 대한 아버지와의 갈등(그때나 지금이나 국문학은 부모가 선호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난생처음 맞닥뜨려야 할 서울 생활에 대한 두려움까지 스무 살도 안 된 청년이 감내해야 할 어려움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고난 속의 어린 가슴에 시편들이 와닿았던 덕분에 국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고, 거기서 나는 내 인생의 자양분 같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야 안 사실이지만, 당시 마지막 제자였던 우리에게 소설 창작을 가르쳐 주신 황순원(黃順元, 1915~2000) 선생님은 바로 황동규 시인의 아버지였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처절하게 느꼈던 것은 명백한 질투심이었다.
아버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문학사의 거봉(巨峯)이고, 아들은 「즐거운 편지」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에서 입증된 것처럼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것이 못내 믿기지 않았다고나 할까(황동규 시인의 딸 또한 새로운 창작의 금자탑을 쌓고 있는 ‘황시내’ 작가이고 보면 3대가 우리 문학사를 빛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질투심은 이내 왕성한 습작 활동과 거듭되는 좌절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스스로 준엄한(?) 독자(讀者)가 되기로 타협하면서 나의 무모했던 질투의 시기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시인 황동규의 생애와 작품 활동
황동규 시인은 1938년 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거기서 유년기를 보내고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越南)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7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진학하여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르네상스의 인간상(人間像)」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6∼1967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영문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0∼197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연구원, 1987∼1988년 미국 뉴욕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2003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에서 정년(停年)을 맞았다.

시인으로서 황동규의 삶을 간추리면, 1958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선생이 시 「시월(十月)」,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 등 세 편을 《현대문학》에 추천함으로써 등단했다.
초기에는 그의 대표적인 사랑시 「즐거운 편지」를 비롯해 첫 시집 『어떤 개인 날』에 실린 연작시 「소곡(小曲)」과 같은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를 이루었다. 황동규의 시를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인정하겠지만, 이른바 ‘사랑’ 또는 ‘미움’ 그리고 이를 합친 ‘애증(愛憎)’의 마음이 점철된 일반적인 연애시와 달리 담백하면서도 산뜻한, 나아가 진심이 번뜩이는 시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연가(戀歌)라는 점에서 그의 시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어 두 번째 시집 『비가(悲歌)』(1965)에서는 이별 또는 실연(失戀)마저 달갑게 수용하는 자세를 발전시켜 숙명적인 비극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더욱 성숙해진 세계관을 시적(詩的)으로 승화하고 있다.
1966년에 김현(金炫, 1942~1990), 김주연(金柱演, 1941~), 김화영(金華榮, 1941~), 박이도(朴利道, 1938~), 정현종(鄭玄宗, 1939~)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四季)》를 펴냈다. 1968년에는 김영태(金榮泰, 1936~2007), 마종기(馬鍾基, 1939~)와의 3인 공동시집 『평균율(平均率)1』을 출간했으며, 같은 해에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열하일기」, 「전봉준」, 「허균」 등의 시를 통해 연가로서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소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에 구현된 것처럼 짙은 모더니즘 계열로 자리 잡게 된다.
이어 나온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에서는 이미 작가의 독특한 문학세계로 인정받은 극서정시에 관한 실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1982년 「풍장(風葬)1」을 시작으로 1995년 월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70」을 발표함으로써 14년여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계속 다루었다는 점에서 문단의 화제가 된 연작시를 마감했다. 그리고 이 연작시들은 시집 『풍장』(1995)으로 발행되었다.
그 밖에 시집으로 『열하일기』(1972), 『삼남에 내리는 눈』(1975),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외계인』(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2000),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꽃의 고요』(2006), 『사는 기쁨』(2013), 『겨울밤 0시 5분』(2015), 『연옥의 봄』(2016), 『오늘 하루만이라도』(2020), 『봄비를 맞다』(2024) 등이 있다.
이밖에 시론집 『사랑의 뿌리』(1976)와 산문집 『겨울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4), 『시가 태어나는 자리』(2001),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말고도 한국문학상(1980), 연암문학상(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2), 호암예술상(2016) 등을 수상했다.
시집 『어떤 개인 날』과 시 「즐거운 편지」에 숨은 이야기
황동규 시인의 첫 시집인 『어떤 개인 날』은 가로 125mm, 세로 185mm 크기에 양장 제책으로 만들어졌으며, 책함(冊函) 속에 들어 있다. 500부 한정판 제작이었으며, 본문 105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책함 표지를 보면 제목 ‘어떤 개인 날’이 있고, 그 아래에 ‘황동규 시집’이란 문구가 한자(漢字)로 표기되어 있다. 책함 안에 들어 있는 시집을 꺼내면 양장본 표지에는 녹색 바탕에 파랑 색깔의 활자로 ‘黃東奎 詩集’이란 표기가 가로쓰기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표지를 넘기면 속표지가 나오는데, 질감이 느껴지는 종이에 이번에는 세로쓰기로 ‘黃東奎 詩集 어떤 개인 날 1961 中央文化社’라는 표기가 보인다.



그런데 속표지에 앞서 겉표지와 본문을 연결하고 있는 면지(面紙)에 보면 이 시집을 먼저 헌책방에서 구한 사람의 필적으로 보이는 글귀가 있어 눈길을 끈다. 단아한 손글씨로 “불휘에서 스물넷/여름 끝 영b./1987.8.22. 토./내가 태어나기도 전에/엮은 황동규 님의 시집을/발견한 내 감격이란…”이라고 적은 것이다.
글씨체와 이름으로 보아 젊은 여성이 1987년 한여름에 어느 헌책방에선가 이 시집을 발견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스물네 살이었다니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닌가. 당시의 나는 군 전역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있었다. 그렇게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소유했던 황동규 시인의 첫 시집이 돌고 돌아 마침내 나에게로 찾아왔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본문이 시작되는 부분에 차례가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시집 『어떤 개인 날』은 모두 4부에 걸쳐 30편의 시를 싣고 있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한밤으로
겨울노래
겨울밤 노래
달밤
기도(祈禱)
얼음의 비밀(秘密)
눈
겨울날 단장(斷章)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어떤 개인 날
Ⅱ
시월(十月)
즐거운 편지
봄날에
동백나무
유성(流星)
조그만 방황
Ⅲ
소곡(小曲)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Ⅳ
어떤 여행(旅行)
삐에따
물의 밝음
유리알 유희(遊?)
후기(後記)
시집에 실린 첫 작품은 「한밤으로」이며, 표제작 「어떤 개인 날」은 1부의 마지막에, 그리고 미당이 《현대문학》에 추천한 등단작 세 편은 모두 2부에 실려있다. 특히, 문제작 「즐거운 편지」는 54쪽에서 55쪽에 걸쳐 실려있는데, 그 전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姿勢)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落葉)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 작품은 황동규 시인이 고등학생이었던 열여덟 살 무렵 교지(校誌)에 싣기 위해 제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초등학교 동창인 어느 여학생의 언니, 즉 연상의 여성을 좋아했던 시인이 그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시라고 한다.
동료 문인들의 평가를 보면 황동규 시인의 작품이 내포한 의미를 더욱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은 「즐거운 편지」를 포함하여 황동규의 문학세계를 평가하는 글에서 “그는 사랑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종말을 사랑하고 그 사랑들의 무모함을 다시 사랑한다. 그는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기다림에 대한 처절한 열망을 몸으로 깨닫고 있다.”라고 썼다.
같은 맥락에서 시인의 편지는 ‘그대’를 넘어 미래의 ‘시적 주체’에게로 향하는데, 이 시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믿는다”라는 표현은 그 시적 주체가 자신의 무모한 사랑을 굳게 믿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이런 믿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데,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 사랑의 동력을 잃어버렸을 때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도록 자신을 다독인다. 이처럼 실패를 견디면서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는 시적 주체가 끝내 맛보게 될 ‘진정한 사랑’은 달콤할 것이기에 이 시의 제목이 ‘즐거운 편지’이리라.
한편, 황동규 시인은 고등학생 시절 작곡가를 꿈꿨다고 한다. 그런 꿈을 포기하고 영문학자 겸 시인이 되어 도달한 차원이 바로 ‘극서정시’였다. 서정(抒情)은 곧 소년 황동규가 품었던 욕망이었을 것이다.
어느덧 묘비명을 노래하는 노시인,
그러나 언제나 개어 있는 맑은 시인
시집 『어떤 개인 날』의 마지막은 시인이 쓴 후기(後記)가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간기면(刊記面)이 나온다. 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후기(後記)
오래 전부터 시집(詩集)을 하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 몇 번인가 모았다 버렸다 했다. 지금 막상 출판을 하려고 다 모아 보니 그 욕망은 어느샌가 다른 것으로 변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시들에게서 나는 잠깐 잠깐의 정열(情熱)의 흔적만 발견하게 되는 까닭이다.
시 한편 한편에 있어서도 그렇다. 처음에 들끓던 계획(計劃)과 열망(熱望)과 감격(感激)은 시가 자리 잡힘에 따라 갑자기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큰 물이 지듯이. 그리고 마음 속에 한 막막한 빈터를 남겨 놓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에게 한 허탈감을 주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빈터의 늘어감이 결국 내 시의 발전이라 믿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나와 닮은 슬픔과 기쁨을 가진 사람들에게 바친 눈물의 흔적이며, 내가 스스로 언어의 한계(限界)에 뛰어든 적막(寂寞)이며, 쓸쓸하나 어쩔 수 없는 나의 바라봄이기 때문이다.
주위가 어지러울수록, 생활(生活)이 가열(苛烈)할수록, 우리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 자세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실(眞實)할 때, 단순한 희망에 의해 구원(救援)받은 적이 없으며 어떤 실망(失望) 앞에 헛된 눈물을 바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할 때, 어느 곳에서나 우리 자신의 깊이에서 길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사랑했고 거기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인류의 끊임없는 발전에 대해서 나는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긴 하다. 그러나 신(信) 불신(不信)이 무슨 문제이리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다운 일을 하는 한(限).
좀 부족할는지도 모르나 자기 자신들의 품위(品位)를 얻을 그 시간을 가지는 데 혹시 도움 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 나는 이 시집을 내놓는다. 마음 무거운 일을 하여 주신 원응서(元應瑞) 선생이나 장정(裝幀)을 해주신 유석준(兪錫濬) 선생에게 폐만 끼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961년 사월
동규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의 낯선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원응서’와 ‘유석준’이다. 황동규 시인의 아버지 황순원 선생에게는 일생을 두고 가까이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번역가이자 수필가이며 문학잡지 발행인이었던 원응서(1914~1973)이다. 1914년 평양에서 태어난 원응서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문인으로, 1954년에 극작가 오영진(吳泳鎭, 1916~1974)이 창간한 《문학예술》에 참여했다.
함께 참여한 주요섭, 박남수, 김이석도 모두 평양 태생의 월남 문인이다. 그리고 유석준 또한 평양미술학교 응용미술과 교수로 있다가 월남한 화가였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 황순원 선생과 교분이 깊었던 사이였는데, 친구의 아들인 황동규 시인의 첫 시집 발간에도 큰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기면을 보면, 우선 맨 위에 ‘500부 한정판(限定版)’이란 표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옆으로 ‘제348호’라고 쓰여 있으며, 여기서 숫자는 손글씨체다. 그러니까 이 책은 1961년에 나온 황동규 시인의 첫 시집 『어떤 개인 날』 500부 중에서 348번째라는 뜻이다. 한정판 발행일로부터 6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500부 중에서 상당수가 훼손되었거나 멸실(滅失)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도 잘 간직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아래 인지(印紙)가 붙어 있다. 60년 이상의 세월이 훨쩍 흘렀음에도 인장(印章)으로 새긴 붉은 빛깔의 이름 두 글자 ‘東奎’가 선명하다 못해 찬란하다. 그 아래로 시집 제목과 함께 책값이 찍혀 있다. 이로써 책값은 당시 화폐단위로 ‘1,000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행처는 당시 을지로2가에 있었던 ‘중앙문화사’인데, 이곳은 황동규 시인의 아버지 황순원 선생의 단편 「소나기」가 처음 실린 소설집 『학(鶴)』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인들의 책이 출판된 곳이기도 하다.

한편, 황동규 시인은 2024년에 첫 시집 이후 열여덟 번째가 되는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로써 1978년 발행을 시작한 [문학과지성 시인선]에서만 열네 번째 시집을 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집을 낸 것이다. 같은 시인선의 첫 번째 시집도 황동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었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였으니 문학과지성사는 시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출판사가 아닐 수 없다.
어느덧 시력(詩歷) 67년, 노시인의 반열에서도 가장 어른의 자리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시인의 최근 시집 『봄비를 맞다』에 실린 「묘비명」이란 작품이 예사롭지 않다. “극락전에 맴돌던 호랑나비가/꿈속까지 날아와 춤을 췄지만/극락을 꿈꾼 적은 없었다./삼인칭들끼리 모여 사는 곳으로 갔다.” 4행에 불과한 짧은 시이지만, 시로써 달관한 시인의 경지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어느 신문(한겨레)과의 인터뷰에서 “삶이 주는 조그만 즐거움 누리다 가겠다 그런 뜻”이라고 작품 「묘비명」을 언급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40년 넘도록 황동규 시인의 애독자라고 자부해 온 나로서는 시인의 건필(健筆)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노시인의 건강을 빌며, 끝으로 특별히 노시인이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써 이 글을 맺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되 자기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서 읽는 게 아니라, 입맛에 맞지 않는 책도 노력해서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문장이 거칠고, 내용이 어려운 책일지라도 읽어야 합니다.
읽고 싶은 책만, 쉬운 책만 읽는 건 독서가 아니에요. 책을 읽는 것을 즐기되, 이따금 읽기 힘든 책도 읽을 것. 그것이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유일한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황동규 [黃東奎] - 서정의 세계를 노래하는 시인 (인생스토리)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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