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에서의 의사결정과 일상의 선택은 강도만 다를 뿐 본질은 같습니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감정을 가라앉히고 선택지를 구조화해 상대의 반응까지 함께 따져보는 훈련이 필요하죠. 전쟁사는 그런 사고 방식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교재입니다.”
최근 책 <전쟁에서 배우는 인생 전략>을 펴낸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3일 서울 순화동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최 회장의 신간은 카르타고 공방전부터 임진왜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까지 동서고금의 전쟁사를 넘나들며, 역사 속 전투를 오늘의 삶과 경영, 외교 문제로 연결한 책이다. 그는 “전투는 가장 치열한 경영행위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오랜 생각을 이번 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쟁사를 향한 관심은 2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에서 육군 초급장교로 복무하며 전술 교범과 전투 기록을 읽기 시작했고, 이후 경제 관료와 외교 현장을 거치며 전쟁사가 지닌 의사결정의 논리를 더욱 또렷하게 쌓아갔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차관, 주필리핀대사,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지냈다.
그가 전쟁사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낙관의 고정’이다. 최 회장은 “불확실한 상황을 낙관으로 단정하는 순간 판단은 왜곡된다”며 “상대의 반응을 변수로 보지 않고 상수처럼 취급하는 게 가장 흔한 패착”이라고 말했다. 패배는 대개 용기 부족이 아니라, 구조화되지 않은 의사결정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책에서는 널리 알려진 전쟁을 새롭게 바라보는 그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행주산성 전투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녀자의 행주치마와 돌을 던진 정신력의 승리로 설명하는 건 전투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며 “실제 승부는 신무기 운용과 전술의 차이에서 갈렸다”고 했다. 칠천량 해전 역시 지휘부의 감정 붕괴가 조직 전체의 판단력을 무너뜨린 사례로 꼽았다.
최 회장은 “분노와 조급함이 누적되면 어떤 조직도 정상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공군의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수복했던 서울을 다시 내준 인천상륙작전이 ‘과연 성공한 작전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도 던진다.
그는 10여 년 전 헤리티지재단 방문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왜 한국 정부는 그렇게 나이브하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했다. 최 회장은 “개인의 직관이나 선의에 기대는 판단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의사결정을 걸러낼 시스템, 즉 참모 조직과 반대 의견을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현안을 보는 시선도 이 연장선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논란에 대해 그는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는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라며 “관련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키고 상반기 중 약속한 투자의 일부라도 집행해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변동성에 대해선 “원화 약세를 설명할 때 심리 요인이 과장돼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투자 확대, 서학개미, 인공지능(AI) 버블 우려 등을 과도하게 연결해 원화가 계속 약세일 것이라고 믿는 시장의 불안 심리가 퍼져 있다는 얘기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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