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걸릴 거예요. 사실상 도박장 취급인데 어디서 받으려고 하겠어요.”정부가 지난달 ‘1·29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한 직후 경기 과천경마장에서 만난 70대 경마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경마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는 건 시설을 관리하는 한국마사회 직원들이었다. 사람도, 말도 졸지에 이삿짐을 쌀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마권 발매 창구의 한 직원은 “옮기게 될 것이라는 얘기 말고는 구체적으로 들은 내용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서울 주변에 널린 빈 땅을 두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우선 사업에 속도를 내기 쉬워서다. 논밭을 택지지구로 지정하게 되면 수용과 보상 절차를 거치다 시간이 기약 없이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정부 소유인 경마장과 군부대를 옮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게다가 바로 옆 과천지구·주암지구와 연담화(주변 도시 결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교통망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지하철 4호선은 서울까지 깔려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과 위례과천선도 인근을 지날 예정이다. 새롭게 신도시를 조성할 때 뒤따르는 광역교통계획 수립 비용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선 효율적인 선택지인 셈이다.
문제는 경마장을 어디로 옮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 단계라는 점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세수를 염두에 두고 유치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도 같은 의견일지는 의문이다. 경마장은 대표적인 혐오시설 중 하나다. 새 아파트가 잇달아 들어서는 서울 천호동에선 주민 민원에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가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교육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한국에 경마장이란 이름의 시설은 없다. 단어에서 사행성 의미가 강하게 풍긴다는 지적에 경마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지 오래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에선 여전히 대중과 거리감이 있다. 주요 이용객이 1인 단위 고령층 경마꾼이기 때문이다. 경마장을 어디로 이전하든 시간이 빠듯하다. 과천경마장 부지는 2030년 주택 착공이 목표다. 같은 시점에 대체 경마장이 수도권 안에 준공돼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조금만 지체돼도 신·구 경마장의 시간표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자칫 애꿎은 마사회 직원과 말산업 종사자만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이번 대책의 전격적이고 과감한 조치는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속도에 치우쳐 섬세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은 현실적인 목표로 바로잡아야 한다. 시장은 더 이상 ‘추진’이나 ‘예정’ 같은 공허한 목표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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