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354.49
(52.80
1.00%)
코스닥
1,114.87
(0.33
0.03%)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반도체·조선·방산·원전·K컬처, 동시에 빅사이클 맞았다[K-빅사이클]

입력 2026-02-11 09:02   수정 2026-02-11 09:03

장면 1. 미국발 AI 거품론에 나스닥이 비명을 지르고 전 세계 증시가 ‘블랙 먼데이’ 공포에 파랗게 질린 다음 날이었다. 이날도 한국 증시의 추락을 예단하며 하락장에 베팅하는 이른바 ‘곱버스(KODEX 200선물인버스2X)’ 거래량이 코스피 종목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시장은 비웃기라도 하듯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단 하루 만의 반등, 코스피 지수는 단숨에 53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전광판에 새겨 넣었다. 외풍에 흔들리던 ‘변방의 천수답 증시’가 글로벌 쇼크를 스스로 이겨내고 뻗어 나가는 거대한 엔진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린 순간이었다.

장면 2. 한국 주식시장이 시가총액 기준으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 증시를 넘어선 날 김 부장의 기분은 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월 28일 집계 자료를 인용해 한국 증시 시총이 3조2500억 달러로 3조2200억 달러인 독일 증시를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한국 증시는 대만에 이어 세계 시총 순위 10위에 올랐다. 한국인에게 독일은 국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후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스승이자 우리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제조업의 북극성이었다. 이제 제자는 스승을 넘어섰다. 부가가치 낮은 제조를 버리고 독일이 정체기에 빠진 사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벗지 않고 현장을 지킨 한국의 제조업이 마침내 ‘시장의 가치’로 그들을 압도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한국 산업을 깨운 세 번의 파도
2025년 한 해의 끝자락. 산업통상부는 국내 연간 누계 수출액이 7000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6000억 달러 달성 이후 7년 만에 이뤄낸 쾌거이자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달성한 수출 강국의 위상이었다.

값진 성과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정치적 혼란과 미국의 관세 전쟁, 전 세계 보호무역 확산으로 수출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상반기 수출이 감소하며 한국 경제의 미래에는 ‘R의 공포, 성장 잠재력 붕괴’와 같은 비관적 전망이 깊게 깔렸다.

그러나 하반기 반전이 시작됐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장 신뢰가 회복되고 대미 관세 협상 타결 등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지난해 6월부터 6개월 연속 해당 월 실적 최대치를 경신하는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양적인 팽창뿐 아니라 질적인 진화도 뚜렷했다. 반도체를 필두로 자동차, 선박, 바이오 등 주력 제조업이 굳건히 버티는 가운데 K-푸드와 뷰티 등 소비재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가세했다. 또한 미·중 의존도를 낮추고 아세안, EU, 중남미로 시장을 다변화했으며 9월까지 수출 중소기업 수와 수출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수출 저변 또한 한층 넓어졌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주의 강화로 “망한다”던 한국 경제의 대반전 서사다.

그러나 이 드라마틱한 역전극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벼랑 끝에서 마주한 위기를 ‘빅 사이클’의 기회로 치환해 낸 한국 산업의 저력은 지난 40년의 역사가 증명한다. 한국 산업의 비약적인 도약을 이끈 결정적 모멘텀 역시 외부의 거센 풍랑으로부터 시작됐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한국 산업의 무대가 바뀌던 1980년대 한국의 고민은 깊었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가를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원천 기술도 자본도 턱없이 모자랐던 시절이었다. 일본의 정교한 기술력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고 시장엔 ‘일제’와 ‘미제’에 대한 선망이 가득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제품이 고부가가치 산업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꿈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85년 미국이 일본의 팔을 꺾은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하루아침에 폭등하며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반토막 났다. 우리로 치면 1400원 하던 환율이 순식간에 700원이 된 셈이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10위권 중 6~7개를 휩쓸던 일본 기업들이 휘청거리며 링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이 사라진 자리를 한국의 반도체, 조선, 철강이 악착같이 파고들며 ‘링 위의 공간’을 확보했다. 반도체가 수출 품목 1위를 차지하고 1994년에는 단일품목으로는 최초로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선박은 세계 1위의 수주율을 올렸고 CDMA 휴대폰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수출시장에서 급부상했다.

1990년대 들어 중국이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자 한국 경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중국산 저가 공세에 한국 경제가 망할 것이란 우려가 파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터졌고 IT 버블 붕괴 여파에 카드대란까지 그림자가 짙었다.

기회는 또 외부에서 터졌다. 추격자인 줄 알았던 중국이 실제로는 한국산 중간재와 소비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메가톤급 폭풍 속에서도 한국이 멀쩡히 버틴 이유가 바로 이 중국의 소비 덕분이었다. 현대중공업 주가가 60만원을 돌파하며 “돈을 너무 많이 벌어 어쩔 줄 몰라 했다”던 이른바 ‘차·화·정’의 황금시대였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가 시총 톱5에 올랐고 롯데쇼핑,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도 시총 상위권에 빠르게 진입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황제주’로 이름을 올렸다.


세 번째 파도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국이 안보와 패권을 이유로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척하기 시작하면서 정교한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유일한 대안으로 한국이 다시금 부상했다. 중국이 패권 도전에 가로막혀 비워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공급망에서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얻었다. ‘7000억 달러 수출’이라는 경이로운 성적표는 바로 이 세 번째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해 낸 결과물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노르웨이 국방물자청과 맺은 9억22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천무 풀패키지’ 공급 계약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압도적인 가성비와 신뢰성, 그리고 신속한 납기 능력을 갖춘 한국의 방산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닌 ‘최우선 순위’가 됐다.

이 밖에도 반도체가 AI 서버향 강한 수요와 가격 상승에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했고 자동차 역시 미 관세 등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대 실적 경신이 확실시된다. 하이브리드차 등으로 선제대응한 결과다. 바이오헬스 부문 역시 신규 품목허가 확대와 위탁생산 수주 증가로 2018년 대비 수출액이 90% 이상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스마일 커브 뒤집은 제조업의 역습
이는 곧 수십 년간 제조 현장에서 버티며 쌓아온 ‘축적의 시간’이 만들어낸 역습이다. 남들이 부가가치가 낮다며 공장을 닫고 설계를 외주로 돌릴 때 우리는 끝내 제조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과거 글로벌 산업을 지배했던 이론은 ‘스마일 커브(Smile Curve)’였다. 연구개발(R&D)과 마케팅이 양 끝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가져가고 정가운데 위치한 ‘제조’는 가장 낮은 이익을 챙기는 구조다. 이 프레임 안에서 한국의 제조업은 오랜 시간 고생은 많이 하지만 돈은 못 버는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AI 시대가 도래하며 판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AI가 기획과 코딩, 심지어 마케팅 전략까지 대신해주기 시작하면서 R&D와 마케팅의 희소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반면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대신할 수 없는 영역, 즉 실제로 물건을 정교하고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물리적 기술력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낸드 가격이 2배로 뛰고, SK하이닉스가 역사상 유례없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제조업이 부가가치의 최상단으로 올라선 ‘역 스마일 커브’의 상징적 장면이다.

결핍이 만든 괴물 같은 기술력도, 한국인 특유의 독한 집념도 오늘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기 요금 수백억원을 내지 못해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끊겠다”는 통보를 받을 만큼 벼랑 끝에 몰렸던 하이닉스 시절 연구원들은 고철 기계를 닦아 쓰고 난방도 안 되는 연구실에서 외투를 껴입은 채 밤을 새웠다. “누가 이런 비싼 메모리를 쓰겠느냐”는 비아냥 속에서도 10년 뒤의 병목 현상을 예견하며 매달린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방산의 서사 역시 극적이다. 한·미 미사일 지침이라는 족쇄에 묶여 사거리를 늘릴 수 없게 되자 우리 연구진은 “그렇다면 탄두 무게를 무제한으로 키우자”는 역발상을 선택했다. 그 집념은 결국 8톤이라는 기상천외한 무게의 탄두를 실은 세계 최강의 재래식 미사일 ‘현무’를 낳았다. 선진국의 완제품을 가져다 무작정 분해해 치수를 재고 밤새 다시 도면을 그리던 ‘역엔지니어링’의 눈물겨운 시간은 이제 K2 전차와 K9 자주포라는 세계적 무기 체계를 탄생시킨 비옥한 토양이 됐다.

현대차는 엔진 원천 기술에서 앞선 독일과 하이브리드의 선구자 일본 사이에서 독자적인 생존로를 개척해야 했다. 그 결과 특정 기술에 안주하는 대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수소차를 동시에 아우르는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을 누구보다 빠르게 구축했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시장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지자 현대차는 준비된 하이브리드 라인업으로 즉각 대응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는 기민함을 보였다. 나아가 현대차는 ‘로봇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가장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세계 최고의 로봇 기술력을 가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전격 인수하고 자동차 생산 공정을 로봇 지능화로 탈바꿈시킨 결정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매몰되지 않는 한국적 혁신의 정점을 보여준다.

어디 생산뿐인가. 세계에서 가장 극성맞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국 소비자들도 일등 공신이다. 조금의 결함도 용납하지 않는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다 보니 한국의 IT 제품과 스마트폰 카메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갖추게 됐다. 화장품 역시 기초와 색조의 경계를 허무는 마스크팩, 쿠션팩트, 선스틱 등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며 전 세계 뷰티 시장의 표준을 바꿨다.
빅사이클, 주가 1만 시대를 향한 서막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의 주도주와 증시가 여전히 글로벌 경쟁사 대비 저평가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 내 FOMO와 빠른 상승 속도는 버블을 연상시키지만 기업이익의 상향 흐름과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은 아직 정점이 아님을 암시한다”며 “AI 관련 하드웨어 수요에 대한 믿음과 거버넌스 이슈 해결이 이어지는 한 코스피의 우상향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12개월 코스피 목표가는 7300이다.

지금의 ‘오천피’는 단순한 숫자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 산업이 수십 년간 독립을 꿈꾸며 갈고 닦은 기술력과 세계 정세의 변화가 맞물려 만들어낸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결과물이다. 원전 기술의 자립, 미사일 주권 확보, 그리고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지난 세월 ‘끊임없이 독립하려 했던 처절한 노력’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누구도 무시 못 할 ‘포식자’의 권력으로 돌아왔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