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조달러(약 13경 원)에 달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연합체 국제기업거버넌스네트워크(ICGN)가 한국 국회와 금융당국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코스피 5000 시대를 맞아 한국 기업들이 '본질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ESG 공시 의무화의 법적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는 취지다.
ICGN은 5일 서한에서 "ESG 공시가 단순한 '거래소 규정'이 아닌 '자본시장법'에 명시되어야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확보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날 국회 ESG포럼에서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신속 처리를 촉구했다.
ICGN은 1995년 설립되어 전 세계 40여 개국, 300개 이상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거버넌스 단체다. 노르웨이국부펀드 등 연기금과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가 가입돼 있으며 이들의 총 자금 운용 규모는 90조달러에 이른다. 이들의 이번 서한은 한국 자본시장의 ESG 투명성이 글로벌 자금 유입의 결정적 잣대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날 서한에서 ICGN은 기후 리스크, 공급망 인권, 지배구조 등 지속가능성 정보가 재무제표와 함께 '단일 보고서(Single Report)'로 제공될 때 비로소 기업가치평가의 완결성이 높아진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저PBR 기업의 체질 개선을 촉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나아가는 핵심 인프라라는 평가도 내놨다.
주변국의 움직임은 더욱 가파르다. 특히 중국은 '유럽화'를 표방하며 올해부터 전기차 배터리 탄소발자국 보고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는 Scope 3(공급망 전체)를 포함하는 강력한 조치로, 유럽 배터리법에 대응해 자국 표준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한국이 ESG 공시 법제화를 미루며 국제 표준(ISSB)과의 정합성을 놓칠 경우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의 신뢰 상실은 물론 중국발 '탄소 무역장벽'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
젠 시슨 ICGN 대표는 법적 명확성과 국제 표준 정합성을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핵심으로 꼽으며 "금융위원회가 조속히 'ESG 공시 로드맵'을 발표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용환 ICGN 한국 자문위원 역시 "최근의 지수 상승이 AI·반도체 열풍에 기댄 측면이 크다"며 "저PBR 기업의 근본적 개선과 정당한 가치 평가를 위해 ESG 공시 법제화가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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