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급식 조리사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반 기업체 구내식당 조리사들 역시 장기간 조리 환경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폐암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형 화구 앞에서 고온의 불꽃과 씨름하며 조리 연기(조리흄)를 마시는 업무 강도는 학교 급식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기, 평생을 사내 구내식당에서 근로자들의 한 끼를 책임지다 폐암이라는 큰 벽을 마주한 뒤, 산재 보상을 통해 삶의 전기를 마련한 구 선생님(가명)의 실제 사례가 있다.
구 선생님은 수십 년간 좁은 조리 공간에서 충분하지 않은 환기 시설에 의지한 채 매일같이 기름 연무와 열기를 견뎌왔다. 그에게 익숙했던 작업 환경은 어느 날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로 찾아왔다. 평소와 달리 불과 다섯 발짝을 떼기도 힘들 만큼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반복되었다. 단순한 피로라 생각하며 찾은 병원에서 그가 마주한 진단명은 '폐암 4기'였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는 그를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투병의 고통과 경제적 막막함이 겹치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지원 소식조차 "사기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자신의 질병이 평생의 헌신에 대한 결과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폐암 산재보상 제도’를 알게 된 후, 구 선생님은 긍정적인 의지를 되찾고 치료와 보상 절차에 차분히 임하기 시작했다.
Q. 폐암 진단 당시의 심경은 어떠하셨나요?
“처음에는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27년 넘게 회사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숨이 차서 찾은 병원에서 암이라는 선고를 받으니, 남겨질 가족들 걱정과 앞으로의 치료비 생각에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게다가 제가 일하는 환경이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더욱 막막했습니다. 직원들 식사 시간에 맞춰서 대량 조리를 해내는 것, 큰 화구 앞에서 뜨거운 불과 조리 연기, 기름 냄새를 마시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주어진 업무를 묵묵히 해낸 그 시간들이 제 몸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Q. 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치료를 받으셨나요?
“이미 병기가 깊어 수술보다는 항암치료와 약물치료를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아파티닙(afatinib/지오트립)을 처방받아 매일 복용하며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갔고, 컨디션에 맞춰 치료 방법을 조절해 나갔습니다. 조직검사와 항암 과정이 체력적으로 매우 버거웠지만, ‘내 몸의 속도에 맞추자’는 마음으로 의료진을 믿고 관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Q. 힘든 투병 생활 속에서 예후를 좋게 했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투병을 시작할 때는 미처 몰랐지만 기초 체력이 정말 중요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조리사로 일하는 동안 체력이 바닥난 상태여서 치료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 구내식당은 정해진 점심시간에 맞춰 수백 명의 식사를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기에 항상 시간에 쫓기듯 일해야 했습니다.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이며 평생을 보내다 보니 미처 돌보지 못한 체력이 투병 생활 내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 가급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습니다. 마음가짐부터 바꾸려고 하니 표적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만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욕심내기보다 내 몸의 신호에 맞춰 몸을 돌보고, 무엇보다 병에 걸린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이 긴 투병 생활을 버텨내는 저만의 방법이었습니다.”
Q. 폐암 산재 보상을 통해 보상급여를 받은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보상급여 덕분에 치료비와 생활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경제적인 걱정 없이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제 직업력을 인정받은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차분하고 긍정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구 선생님의 산재보상을 담당한 노무법인 폐 대표 정현일 노무사는 "구 선생님은 학교 급식 조리사가 아닌 일반 기업체 구내식당에서 장기간 근무한 사례로, 밀폐된 공간에서 짧은 시간 내에 대량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라고 설명하며 충분하지 않은 환기 시설에서 발생한 '조리흄(Cooking Fume)'이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정 노무사는 폐암 산재의 핵심 쟁점이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닌 오랜 시간 누적된 업무 환경의 입증'에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현일 노무사는 “산재 보상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일해온 노동자들의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구내식당 조리사 역시 급식실 조리사와 마찬가지로 발암물질인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되는 위험군이기에, 비슷한 환경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면 반드시 폐암과 업무의 관련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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