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나'를 외치며 윙크를 하던 국민 여동생은 없었다. 아픔을 간직한 기녀와 학생, 여공, 그리고 임산부까지 "매일이 한계였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우며 완성한 캐릭터, 그리고 그걸 완성한 배우 안소희(34)만 있었다.
안소희가 연극 무대에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클로저', '꽃의 비밀'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연극 도전이다. 이번엔 2인극 '그때도 오늘2-꽃신'(이하 '꽃신')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가진 4가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내는 이 작품에서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변신을 거듭한다. "공연에 내 모든 생활을 맞추고 있다"는 안소희의 목소리에서 치열한 현장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묻어났다.
'꽃신'은 배우에게 가혹하리만치 친절하지 않은 극이다. 단 두 명의 배우가 퇴장 없이 의상을 갈아입고 직접 무대 세트를 옮기며 4개의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안소희는 "이러한 도전들이 감정을 정리하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더 도움이 됐다"고 했다. 쉽지 않은 캐릭터이자 도전의 연속이었기에 안소희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글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겁이 났다. '이 좋은 걸 내가 망치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보통의 작품은 하나의 기승전결을 향해 달려가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4개의 에피소드 모두가 각기 다른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어요. 극한의 감정을 네 번이나 쏟아내야 하죠. 그러다 보니 다른 극보다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소모가 엄청나요. 최근엔 크게 몸살을 앓기도 했어요. 그런데 몸이 아프고 나니 오히려 '아, 내가 제대로 쏟아붓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더라고요.(웃음)"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는 생활 루틴 브이로그 영상이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관리 소희'라고 불리는 안소희다.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커피를 끊고 생강차를 마시며, 쉬는 날에는 오로지 회복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대 위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고 미소를 보였다.

이번 작품에서 안소희의 변신은 파격 그 자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를 껴안고 강물에 뛰어든 기생 논개를 비롯해 한국전쟁 직후 "꽃신을 사 달라"고 조르는 철없는 여동생, 1970년대 월급이 밀려 항의했다가 쫓기는 몸이 된 여공, 그리고 2000년대 엄마와 애증의 관계에 놓인 임신 중인 딸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여기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3개 지역의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하는 숙제도 안았다.
"사투리가 주는 특유의 '말맛'을 살리는 게 가장 걱정이었어요. 지역의 정서와 아픔이 담긴 언어니까요. 함께 출연하는 이상희 선배, 김혜은 선배가 경상도 분이셨어요. 특히 혜은 선배님은 대사를 녹음까지 해서 주셨죠. 같은 캐릭터를 여러 명이 연기하는 것도 연극에서 처음 경험하는 건데, 그러면서 '집단 지성'의 힘이 크다는 걸 느껴요. 혼자 끙끙 앓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짜릿해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그룹 원더걸스 센터로 교복을 입고 '아이러니'를 부르는 안소희의 데뷔 무대가 있지만 그는 이미 30대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미혼의 배우가 임산부 연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다.

"사실 교복 입는 것에 대해 큰 걱정은 안 했어요. 아직 입어도 많이 어색하지 않은가 봐요.(웃음) 오히려 임산부 역할이 비주얼적으로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고민했죠. 다행히 전작 '꽃의 비밀'에서 유부녀 역할을 해본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외형적인 것보다 엄마와 딸의 관계, 그 정서에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더라고요."
그는 역할을 바꿀 때마다 목소리 톤부터 행동거지까지 철저하게 계산했다. "백스테이지에서 옷을 갈아입고 무대를 직접 전환하는 순간부터 이미 다음 캐릭터로 변신이 시작된다"는 그는 "관객들이 그 숨 가쁜 과정을 '공연의 멋'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는 안소희에게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하고 소극장을 택한 건 "제대로, 진하게 연기해보고 싶다"는 갈증 때문이었다.
"가수 활동을 병행한 게 아니라 완전히 연기자로 전향한 거였잖아요. 그래서 늘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매체 연기는 한 번 촬영하면 끝이라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은데 연극은 매일매일 부족함을 채워갈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에요. 어려운 숙제를 매일 다시 풀 기회를 얻는 기분이랄까요. '클로저'나 '꽃신' 같은 작품을 통해 저를 더 깨부수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연극 무대는 과거 가수 시절의 환호성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주는 곳이다.
"콘서트 때 받는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라면 연극 무대에서 받는 에너지는 묵직한 울림이에요. 실시간으로 관객의 숨소리를 느끼고 내 실수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그 긴장감이 좋아요. 라이브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희열, 그 '도파민' 때문에 계속 무대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안소희는 이제 서울 공연을 마치고 세종, 오산, 안동 등 지방 투어에 나선다. 대극장 무대라는 새로운 숙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근 2년 동안 연극 무대에서 치열하게 보냈어요. 이제는 여기서 다져진 내공을 가지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을 만나고 싶어요. 예전보다 조금은 더 깊어진 눈빛, 단단해진 목소리로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어서 계속 새로운 걸 찾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고 저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그게 배우로 살아가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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