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와 ‘럭셔리’의 홍수 시대다. ‘최고급 주방’을 갖췄다는 아파트와 인테리어 업체의 홍보 문구를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값비싼 수입 자재를 사용하고 아일랜드식 구조를 적용하면 모두 고급 주방일까.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주방가구 브랜드 발쿠치네 창립자인 가브리엘레 첸타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디자이너·사진)에게 ‘좋은 가구’의 조건에 관해 물었다. 그의 답은 명쾌했다. “이탈리아의 뛰어난 장인정신으로 건축가의 도면에 맞춰 단 하나뿐인 주방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럭셔리입니다.”
주방은 매우 복합적인 공간이다. 조리, 세척, 수납 등 구체적 기능을 수행하는 ‘작업 공간’이다. 동시에 관계적인 성격도 띤다. 함께 모여 식사하는 사교의 장이면서 업무를 보거나 공부도 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첸타초 디자이너는 서면 인터뷰에서 “기능의 확장은 주방 가구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며 “이런 변화의 핵심 원칙은 ‘일상의 동작을 단순화해 움직임과 사용의 자유를 최대한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발쿠치네의 독창적 솔루션인 ‘스페셜 엘리먼츠(Special Elements)’가 탄생한 배경이다. ‘모든 것이 손이 닿는 곳에, 한순간에 정리되도록’이란 목적 아래 개발된 시스템이다. 대표 상품인 ‘로지카 첼라타(Logica Celata)’에서 이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상부 장 도어가 자동으로 여닫히는 기술이 적용된 모델이다. 주방을 조리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땐 모든 기능적 요소가 손 닿는 곳에 있도록 설계됐다. 주방 사용이 끝나 도어를 닫으면 베이스 유닛과 완벽히 일체화된 모습으로 숨겨지는 게 특징이다. 첸타초 디자이너는 “닫혀 있을 땐 (상부 장 도어가) 우아한 건축적 요소로 변모해 주거 공간에 완벽하게 녹아든다”며 “기능성과 미학,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이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인체공학적 디자인’은 발쿠치네를 대표하는 정체성 중 하나다. 중력과 카운터밸런스(안전장치)를 활용해 공기처럼 가벼운 ‘아에리우스(Aerius)’ 상부 장, 필요에 따라 주방 설비를 드러내거나 숨길 수 있는 ‘뉴 로지카’와 ‘에어 로지카’ 등이 대표적이다. 첸타초 디자이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체공학 요소로 ‘빛’을 꼽았다. 그는 “주방 백 패널은 빛을 균일하게 확산시키는 소재로 제작돼 눈부심 없는 쾌적한 조명을 제공한다”며 “기분, 자연광, 원하는 분위기에 따라 조명 배경을 조절할 수 있으며, 24시간 태양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서카디언(생물학적 주기의) 조명까지 구현된다”고 밝혔다. 사람에 맞춰 ‘적응하는’ 주방인 셈이다.
유리는 발쿠치네의 핵심 소재다. 발쿠치네는 1987년 세계 최초로 주방 가구에 유리를 도입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유리의 매력은 무엇일까. 첸타초 디자이너는 “직물 같은 질감과 그래픽·예술적 연출까지 가능한 높은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 개별 주방을 유일한 존재로 만든다”며 “강화 처리를 하면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색상이 변하지 않으며,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발쿠치네의 철학에도 잘 들어맞는 소재다. 첸타초 디자이너는 “완전히 친환경적인 산업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이를 위해 적은 자원 사용, 재활용 설계, 유해 물질 최소화, 긴 수명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발쿠치네는 2023년 현대리바트와 한국 독점 판매 계약을 맺고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경기 성남 판교의 타운하우스 ‘아펠바움’과 인천 송도 골프클럽인 ‘잭니클라우스 타운하우스’, 서울 성북동 개인주택 등에 발쿠치네 주방가구가 적용됐다. 내년 준공 예정인 서울 서초구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 일부 가구에도 발쿠치네 주방가구인 ‘포르마 멘티스’ 공급이 확정됐다. 첸타초 디자이너는 “발쿠치네는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을 지향한다”며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과 빠른 트렌드 변화 등이 특징인 한국 시장에선 현대리바트와 함께 지역·시대적 특색을 파악해 사용자의 취향과 편의에 최적화된 주방을 맞춤형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방가구 트렌드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뀔까. 첸타초 디자이너는 “오늘날 부엌 중앙에 조리·수납·식사 겸용 공간을 배치하는 ‘아일랜드식 구조’가 핵심 트렌드가 되고 있다”며 “주방이 사회적 공간으로 변화해 온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디자인 트렌드는 주방뿐 아니라 ‘유니크함’과 ‘개인화’를 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쿠치네는 첨단 엔지니어링과 고도의 수작업이 균형을 이루는 생산 구조를 갖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첸타초 디자이너는 “산업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되 일부 공정에선 인간의 손길이 핵심 요소가 된다”며 “이는 이탈리아 장인정신과 노하우에 대한 헌사이자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지속되는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인혁/강영연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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