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파리 8구, 샹젤리제 인근에 자리한 영화관 엘리제 링컨(Elysees Lincoln)이 지난해 10월, 새 모습을 드러냈다. 9개월에 걸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문을 연 이곳은 이제 단순히 영화를 ‘보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레드, 핑크, 그린으로 물든 세 개의 상영관, 파티와 이벤트 장소로 변신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 구성, 극장 자체를 하나의 감성적인 경험이 되도록 설계한 인테리어. 영화관의 전형성을 탈피한 엘리제 링컨은 일부러 찾아가는 극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엘리제 링컨은 20세기 초 창립자 보리스 구레비치 이후 4대째 같은 가족이 운영해온 독립 예술영화관이다. 이 유서 깊은 극장도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며 위기에 처했다. 파리시에 따르면 샹젤리제 일대 영화관의 티켓 판매량은 2014년 190만 장에서 2024년 13만3000장으로 급감했다. 엘리제 링컨의 운영자인 루이 메를과 사뮈엘 메를 형제는 2019년, 운명의 기로에 섰다.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관으로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영화에 애정이 깊은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영화관을 남기자는 것. 그러나 그 방식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엘리제 링컨 프로젝트 의뢰가 왔을 때 정말 흥분했어요. 창의성이 가장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바로 영화의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 미팅에서 메를 형제는 드나보에게 기존 영화관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공간을 피력했다. 이미 세계 주요 극장을 탐방하며 영감을 얻은 메를 형제는 엘리제 링컨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새로운 경제 모델을 기획했고, 이는 바로 기업 행사를 유치하는 대관 사업이었다. 드나보는 그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유연하게 변하는 공간, 새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영화관을 구상했다.
드나보의 손길이 닿은 엘리제 링컨에선 전통적인 검은 벽과 빨간 좌석이 사라졌다. 대신 네오 레트로 스타일의 컬러와 패턴으로 물든 벽과 좌석이 공간을 채웠다. 분위기는 아늑하고 따뜻하며 빈티지 감성이 가득하지만, 설비는 최첨단으로 무장했다. 4K 레이저 프로젝션과 최신 사운드 시스템은 영화의 감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새롭게 설치된 냉방 시스템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 파리의 여름을 대비한다. 극장은 전면적으로 재구성한 세 개 상영관으로 거듭났다. 146석을 갖춘 ‘로디토(L’Audito)’, 소규모 프라이빗 시사회를 염두에 둔 42석 규모의 ‘르 스튜디오(Le Studio)’가 상영을 전담한다면 ‘르 클럽(Le Club)’은 36개 좌석을 가진 상영관이자 최대 200명을 수용하는 이벤트 공간으로 변신한다. 영화관으로서 본분을 다하는 동시에 문화 행사를 열 수 있는 모듈형 극장. 영화로 시작해 다채로운 경험이 일어나는 창의적인 장소로 재탄생한 셈이다.
엘리제 링컨을 구성하는 세 공간 가운데 가장 차분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은 메인 상영관 로디토다. 핑크 컬러의 마름모 패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깊은 올리브 그린 벨벳 좌석의 조화는 리듬감이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드는 절묘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바닥에 깔린 고전적인 보태니컬 패턴 카펫은 영화관의 과거를 환기시키고 복고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소규모 상영관 르 스튜디오는 보다 직접적인 감정의 온도를 전달한다. 핫핑크에서 레드에 이르는 대담한 색채와 기하학적 패턴으로 둘러싸인 공간. 설렘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푹신한 마젠타 컬러의 벨벳 좌석에 앉는 순간, 이곳은 가장 포근하고 안락한 집처럼 느껴진다.
엘리제 링컨의 혁신을 상징하는 르 클럽은 반전 매력이 돋보인다. 영화 상영과 각종 이벤트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평소에는 베이비 핑크 톤의 로맨틱한 무드가 인상적이지만, 파티장으로 전환되는 순간 아치형 개구부가 연속된 벽체와 은은하게 빛나는 원형 벽등으로 장식된 벽면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소리의 파동을 연상시키는 조명과 곡선 구조는 공간에 리듬과 박동감을 더하고, 이곳을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형성되는 사교의 무대로 확장시킨다.
마치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컬러 팔레트와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풍부한 텍스처가 세 공간 전반에 걸쳐 서로 다른 층위로 펼쳐지는 엘리제 링컨은,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를 경험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런 공간의 흐름 속에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위치를 넘어, 영화에 다가가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이런 태도는 엘리제 링컨 전반에 흐르는 디자인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드나보는 색채와 패턴, 조명과 텍스타일, 가구와 음향 요소까지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하며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했지만 그 디테일이 전면에 나서기를 원하지 않았다. 관객이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먼저 경험하고,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비로소 숨겨진 요소들을 감지하길 바랐다.

이런 의미에서 엘리제 링컨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공간이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사방이 빨간색으로 마감된 화장실에 들어서면 마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스피커에서 음악처럼 흘러나오는 유명한 영화 대사를 듣다 보면 드나보가 말한 ‘숨겨진 디테일’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파리에서 가장 상업적인 거리 한복판, 엘리제 링컨의 획기적인 변신은 여전히 사람들이 어둠 속에 모여 앉아 영화를 볼 이유를 말해준다. “영화관은 지역의 활기와 문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살아남길 원하는 모든 독립 영화관에 용기 있는 사례가 되길 바랍니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은 어쩌면 영화 속 장면보다는 그 공간에서 공유한 시간의 온기와 감정일지 모른다. 영화관이 사라지는 시대, 엘리제 링컨은 분명한 정체성을 찾았다.
이정민 아르떼 칼럼니스트/사진=Louis Denava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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