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월당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성역과 같은 곳이다. 서울 압구정로데오거리 한편에 자리한 이곳은 음반매장이자 음악 강연장, 음악 감상실로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과 23년간 함께했다. 개관 이후 음반은 클래식 음악만 취급하던 풍월당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며 지난달 임시 휴업을 알렸다. 온라인 스트리밍이 보편화한 시대, 실물 음반이 설 자리가 또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 클래식 음악계가 술렁였다.
“더 이상 음반을 판매하진 않습니다. 다만 공간을 새롭게 쓰려고 합니다. 시대별로 여러 예술을 나눌 수 있는 라이브러리(도서관)를 만들 겁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최근 풍월당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물 음반 경기가 갑자기 어려워져 닫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이야기는 오해입니다. 처음 매장을 연 2003년에도 레코드 매장이 국내에서만 수천 개가 사라졌어요. 그때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청취 방식이 바뀌고 있었죠. 음반이 없어지면 클래식 음악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가게를 시작했어요. 음악에 대한 연명 치료 같은 것이었죠.”
압구정 금싸라기 땅에서 돈을 벌고자 했다면 더 좋은 방안이 많았지만 그는 매장을 운영하며 만난 인연들을 떠올렸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온 꼬마들은 어느새 내로라하는 악단의 연주자가 됐다. 세월이 쌓이듯 고객과의 추억도 세대를 거쳐 쌓였다. 휴업을 앞두고 1주일 새 풍월당을 찾은 이는 1500명에 달했다. 박 대표는 매장의 마지막을 두 눈에 담아가는 이들의 행렬을 봤다. “이젠 수익과 상관없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남기고 싶습니다. 편안하게 예술을 나눌 수 있는 자리로요.”
풍월당은 건물 5층을 강연장과 음악 감상실로, 4층을 음반매장으로 써 왔다. 박 대표는 5층은 그대로 두고 4층을 책, 음반, 영상물 등을 망라한 도서관으로 바꿔 올봄 다시 열기로 했다. 레코드판(LP) 음반뿐 아니라 책 수천 권을 소장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눈여겨볼 점은 배열이다. 여느 북카페, 도서관과 달리 모든 예술과 철학을 한데 묶어 시대순으로 자료를 배치한다. “음악가가 음악만, 미술가가 미술만 하는 건 충분치 않습니다. 음악가마저 베토벤의 작품이 어떤 시대적 토양에서 태어났는지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토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괴테와 실러의 문학, 헤겔과 횔덜린의 사유를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술에선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풍경을 마주해야 하죠.”

매장을 대신할 도서관의 이름도 정했다. ‘살라 푸가’, 이탈리아어로 푸가의 방이다. 푸가는 한 성부가 다른 성부의 멜로디를 따라가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돌림노래다. 이렇게 시차를 두고 나오는 여러 성부가 서로 얽혀 하나의 음악이 되는 곡인 ‘푸가의 기법’(작품번호 1080)은 바흐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예술도 푸가처럼 시차를 두고 서로를 따라갑니다. 낭만주의, 고전주의라는 말도 건축에서 시작해 음악, 미술에서 쓰였으니까요.”
다른 공간도 마련한다. 풍월당은 최근 미국 뉴욕의 한인 의사에게서 LP 음반 3000여 장을 기증받았다. 이 LP들을 들으며 조용히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라운지에선 약간의 간식을 제공한다. 풍월당은 더 큰 빛을 볼 만한 명반, 주목받지 못한 공연과 콘서트홀 등을 알리는 음악 허브로서도 기능할 예정이다. 랭보, 피카소, 헤밍웨이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인이 오고 간 프랑스 파리의 카페 ‘레 되 마고’, 오스트리아 빈 모더니즘이 꽃핀 카페 ‘그리엔슈타이들’처럼 여러 예술인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두겠다는 취지에서다. 박 대표와 풍월당의 시작부터 함께한 최성은 풍월당 실장도 그 뜻을 같이하고 있다.
예술 공론장을 만드는 작업을 개인이 나서서 하려는 이유는 뭘까.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한 이야기는 유명하죠. 그런데 그 말 뒤에 ‘사람은 마지막 행동으로 판단된다’고 했답니다. 영웅도 그렇죠. 이겨서가 아니라 죽음을 알고 뛰어들었기에 영웅으로 불립니다. 풍월당도 성공하지 못할 일에 뛰어들어 클래식 음악과 예술을 나누고 싶습니다.”
박 대표는 매장을 운영하며 음악 이해의 길라잡이가 될 만한 책을 많이 썼다. 그렇지만 그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어불성설로 본다. 풍월당에 무작정 사람이 몰리는 것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길 바란다. “‘클래식’이란 말 자체가 대중화하지 않은 것에 붙이는 말입니다. 예컨대 모든 자동차가 클래식하다면 ‘클래식카’(역사적 가치가 높은 옛 자동차)라는 말도 안 쓰겠죠. 클래식의 대중화는 불가능합니다. 개개인의 클래식화가 가능하겠죠.”

박 대표는 예술에 올바름이 있다고 본다. 풍월당의 목표도 ‘올바른 아름다움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론장’이다. “공들인 음악이 세련된 사회를 만듭니다. 세련된 사회는 럭셔리(사치품)나 좋은 옷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는 예의범절과 배려심을 갖추고 조화가 잘되는 사회가 세련된 사회겠죠. 전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사람은 삐뚤어지기 어렵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려다가도 ‘지금 내가 뭐 하는 건가’ 생각하게 하는, 클래식 음악엔 그런 힘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관객층에 대한 박 대표의 통찰은 곱씹을 만한 대목이다. “유럽에선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노인이 많지만 한국에선 젊은 관객이 많죠. 이걸 두고 ‘유럽 클래식은 끝났다. 한국 클래식의 미래는 밝다’고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우선 우리나라 공연장에 오는 젊은이는 전공자 비중이 높습니다. 또 한국 공연장에 노인이 적은 이유는 들을 줄 몰라서 못 가는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음악회에 가는 습관이 젊을 때는 없다가 나이 들어 생기긴 어렵습니다. 50·60대에 음악을 듣는 연습을 해야 80대 이후에 멋지게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박 대표는 예술을 향유하려는 이들이 여행에서 참고할 만한 책도 쓰고 있다. 해외 도시별로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노하우를 작은 책자로 선보이기로 했다. 여행 서적이 범람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여행 일정을 짜주는 요즈음 그가 찾은 틈새시장이다. “전 클래식 음악 전문가가 아닙니다. 산을 먼저 오른 사람에 불과합니다. 하산하다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기로 가는 게 더 빨라요’라고 말해주듯 음악에 대해 아는 바를 뒤따라 오르는 이들에게 전할 뿐입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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