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는 오로라로 유명하다. 오로라만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 수를 별도로 집계한 공식 통계는 없다. 하지만 오로라 시즌인 9월부터 4월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매년 1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밤하늘을 물들이는 빛의 장관 덕분에 많은 이가 아이슬란드를 낭만적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떠올리는 아이슬란드는 조금 다르다. 그곳은 하늘의 오로라보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더 빛나는 나라다.아이슬란드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가계도와 병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북대서양의 외딴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인구가 적고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환경, 가계를 기록하는 것이 생존이자 정체성이던 문화 덕분에 가능했다. 이 기록을 유전체 기업 디코드 제네틱스가 모두 디지털화해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국가 차원의 의료 시스템 덕분에 개인의 병력 기록이 표준화돼 있다. 이를 가계도와 결합해 특정 질병이 유전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추적할 수 있다.
“부모님이나 형제, 조부모 가운데 같은 암을 앓은 분이 있나요?” 나는 진료실에서 자주 이 질문을 던진다. 요즘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을 하는 경우를 드물게 본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조부모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할 기회도 줄어들면서, 기억조차 흐릿해진 것이다. 기술은 날로 정밀해지지만, 정작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건 오래된 이야기다. ‘가족력’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유전이고, 어디서부터 환경일까. 유전성 암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보다는 암 가족력일 경우가 많다. 암 가족력의 대부분은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다.
가족력이라는 말 앞에서 사람들은 쉽게 위축된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암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내게도 같은 일이 닥칠 수 있다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까운 가족에게 암 병력이 있으면, 같은 암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도 많다. 가족 중 누군가 암을 진단받았다면 권고안보다 10년 먼저 해당 검사를 시작하라고 한다.
곧 음력 설날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밥상에 둘러앉아 안부를 나누면서, 건강 이야기를 꺼낼 좋은 기회이다.
아이슬란드의 족보는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손에 쥐어진 지도다. “유전자는 총알을 장전하고, 환경은 방아쇠를 당긴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총알이 있다는 사실보다 방아쇠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다. 그래서 가족력은 운명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한 가족이 지나온 시간이 남긴 흔적이며,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조용히 묻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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