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마리를 가져다준 건 소행성 ‘베누’다. 베누는 지구에서 약 3억3300만km 떨어져 있으며, 태양계 형성 초기인 약 45억 년 전의 물질을 고스란히 간직한 ‘탄소질 소행성’이다. 지구와 같은 행성들은 지각 변동과 화산 활동, 대기 작용을 거치며 초기 형성 당시의 정보를 대부분 잃어버렸다. 하지만 베누처럼 크기가 작은 소행성은 열적 변화가 거의 없어 태양계 탄생 당시의 레시피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냉동 타임캡슐과 같다.특히 베누는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지구 근접 소행성’이기도 하다. 인류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수십억 년 전 지구에 물과 유기물을 배달해 생명의 씨앗을 뿌린 주역이 바로 이런 소행성들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하기엔 최적의 연구 대상이다. 그래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16년 베누의 표본을 지구로 가져오는 임무를 가진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을 발사했다. 그리고 7년 만인 2023년 9월, 베누의 시료를 담아 귀환했다. 캡슐 속에는 121.6g의 샘플이 들어 있었다. 고작 종이컵 한 컵 정도의 양이지만, 그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핵심 성분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핵심 성분이 필요하다. 유전 정보를 담는 핵산, 에너지를 만들고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그리고 이 모든 화학반응이 일어날 장소인 물이다. 지금까지 베누 샘플에서는 물, 탄소, 각종 유기 분자가 발견됐다. 아미노산과 핵산을 구성하는 염기(아데닌, 구아닌, 타이민, 사이토신, 우라실 등)와 인산염도 발견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과 일본 공동 연구팀이 ‘당’ 분자를 다수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전 정보의 전달자인 RNA의 뼈대를 이루는 리보스를 비롯해 포도당, 자일로스, 아라비노스, 갈락토스 등 다양한 종류의 당이 확인됐다. 다만 DNA의 재료인 ‘디옥시리보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베누에서 DNA의 재료인 디옥시리보스가 아니라 RNA의 재료인 리보스가 발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바로 ‘RNA 월드 가설’에 힘을 실어 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생명체는 DNA(설계도)가 있으면 이를 복사해 전달하는 RNA(전달자)가 있고, 그 지시에 따라 단백질을 만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초기 생명 탄생 단계에서 이 모든 체계가 한꺼번에 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DNA보다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스스로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심지어 효소처럼 화학반응까지 촉진할 수 있는 RNA가 생명의 첫 단추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베누에서 발견된 당의 구성이 RNA의 재료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초기 지구에서 RNA 중심의 생명 탄생 과정이 먼저 일어났을 것이라는 학설에 힘을 실어준다.
그렇다면 이 재료들은 소행성 내부에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연구팀은 베누가 과거 거대한 모체 소행성의 일부였을 당시, 그 내부에 존재하던 염수(소금물) 환경에 주목했다. 염분은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즉 소행성 내부의 염수 속에서 포름알데히드 등의 기초 분자들이 충돌하며 리보스 같은 복잡한 유기 분자로 합성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생명의 기본 재료가 지구 밖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리보스나 포도당 같은 생명 필수 분자들이 우주에서 미리 생성됐고, 이후 소행성 충돌 등을 통해 초기 지구로 전달됐다는 시나리오다. 결국 소행성이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매개체였을 수 있다는 의미다. 121.6g의 작은 샘플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의 생명은 광활한 우주와 화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생명의 기본 재료가 지구 밖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