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람 끝이 맵찬 2월의 오후, 서재 한편에서 파리 방브(Vanves) 벼룩시장의 보물찾기 끝에 만난 빈티지 크리스털 잔을 꺼내어 본다. 차가운 유리 벽 위에 섬세하게 각인된 포도 덩굴 문양을 손끝으로 덧그리다 보면, 차가운 공기 사이로 따스한 봄의 맥박이 느껴지는 듯하다.
120여 년 전, 유럽의 예술가들은 대량생산과 규격화로 상징되는 직선의 시대에 맞서, 식물의 줄기를 빌려 ‘새로운 예술(Art Nouveau)’을 꽃피웠다. 그 간절한 마음이 잔의 곡선을 따라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저항은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완벽하고 빠르게 계산해 내는 오늘날, 다시금 '인간적인 것'에 목말라하는 현대의 풍경과 묘하게 닮아 있다.
알고리즘이 예측할 수 없는 장인의 미세한 손떨림. 규격화된 데이터로는 재현할 수 없는 유기적인 곡선의 결. 이 감각들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효율에 매몰된 우리를 깨우는 하나의 장치로 되돌아온다.
나무 상자 속에서 낡은 신문지를 한 겹씩 벗겨내며 잔을 꺼내 놓는 가게 할아버지의 손놀림은 무척이나 우아했다. 장인처럼 주름과 일의 흔적으로 가득한 그의 손에는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지만, 그 손끝이 닿는 유리잔만큼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해 보였다. 그 정성스러운 몸짓에 홀린 듯 한참을 침묵하며 빛나는 잔들을 감상하던 찰나, 할아버지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이 글라스는 1920년대 잔이에요. 이 덩굴과 꽃의 카빙을 보세요. 아르누보의 유기적인 곡선과 아르데코의 절제된 미학이 오묘하게 혼재되어 있지요. 참 아름답지 않나요?”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손바닥에 닿는 비대칭의 긴장감이다. 기계로 찍어낸 잔은 손바닥에 닿는 감각이 매끄럽다 못해 무미건조하지만, 장인이 직접 깎아낸 덩굴 문양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불규칙한 리듬을 전달한다. 이 미세한 요철은 술을 따르기 전부터 뇌의 촉각 세포를 깨우며, 곧 마주할 스피릿의 향에 몰입하게 만드는 설계된 장치와 같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규격화된 증기기관의 시대에, 메종(Maison)들은 가장 제어하기 힘든 재료인 유리를 연마하며 유기적인 생명력을 증명해 보였다. 특히 당시 갓 도입되기 시작한 전구의 빛이 정교하게 깎인 크리스털 각면에 반사되어 전시장 전체를 무지갯빛으로 물들였을 때, 대중은 그것을 단순한 공예품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빛'으로 받아들였다. 방브의 빗속에서 마주한 그 작은 잔 역시, 그 찬란했던 박람회의 어느 귀퉁이에서 태어나 100년의 시간을 건너온, 시대정신의 작은 파편처럼 느껴진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 보존된 1897년 에밀 갈레의 유리기물 디자인 드로잉을 보면, 그의 곡선은 완성된 형태 이전부터 이미 자연의 리듬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르누보의 곡선은 즉흥적인 장식이 아니라, 치열한 사유와 설계의 결과였다. 또, 당대의 스피릿 기물들은 식물의 덩굴이 병을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 듯한 축복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효율과 속도라는 직선적 가치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잠시 멈추어 자연의 속도로 숨을 쉬라”고 건네는 유연한 위로와 같다.



이러한 아르누보의 미학을 가장 먼저 비즈니스에 녹여낸 이들은 역설적으로 품격의 원칙을 고수해온 역사 깊은 메종들이었다. 효율과 속도라는 직선적 가치가 지배하던 시대에, 그들은 왜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유연한 곡선을 선택했을까?
당대 메종들에게 곡선은 고도의 브랜딩 전략이었다. 그것은 '복제가 불가능한 난이도'를 선택함으로써 추종자들과의 격차를 벌리는 기술적 선언이었다. 직선이 기계의 언어라면, 유기적인 곡선은 오직 인간의 숙련된 감각만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효율을 포기함으로써 대체 불가능한 권위를 획득한 리더들의 결단, 그것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는 럭셔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초석이 되었다.

그 정점에는 '유리 공예의 시인' 르네 라리끄와 코냑 하우스 하디(Hardy)의 만남이 있다. 하디가 라리끄와 협업해 선보인 '라리끄 사계(The Four Seasons) 시리즈'는 아르누보 미학이 어떻게 술의 가치를 예술로 격상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봄(Printemps)' 에디션의 디캔터 캡(Cap)에 형상화된 유연한 여신의 곡선과 꽃의 문양은, 병 안에 담긴 100년 전 원액의 시간을 시각적 환희로 치환해낸다. 단순히 술을 담는 용기를 넘어, 아르누보의 곡선을 통해 ‘마시는 예술’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서사를 완성한 것이다.
헤네시와 마르텔 역시 바카라의 장인들과 협업하여 포도나무의 생명력을 형상화한 디캔터를 선보였고, 페리에 주에는 에밀 갈레의 아네모네 꽃을 병에 새기며 샴페인을 ‘마시는 명화’의 반열에 올렸다. 그들에게 아르누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신들의 술이 수십 년의 시간을 견뎌 탄생한 ‘자연의 정수’임을 증명하는 시각적 암호였다.

효율과 속도, 명확한 결단이 미덕이 된 시대다. 우리는 매 순간 직선적인 사고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일상을 마주한다. 그런 우리에게 아르누보의 글라스는 소리 없이 묻는 듯하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의 궤적이 지나치게 딱딱해져 있지는 않은지.
코냑 한 잔을 빈티지 글라스에 따르는 순간, 황금빛 액체는 유리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며 향을 피워 올린다. 아르누보 디캔터의 유기적인 곡선은 산소와의 접촉면을 불규칙하게 흐트러뜨리며, 스피릿 속에 잠들어 있던 수십 가지 레이어의 향을 입체적으로 깨워낸다. 직선이 최단 거리로 목표에 도달하는 ‘효율’의 미학이라면, 곡선은 그 과정 속에 숨겨진 다채로운 뉘앙스를 발견하게 하는 ‘안목’의 기술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데이터 너머의 감각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곧 다가올 봄, 방브의 빗속에서 전해진 그 따뜻한 안목과 함께, 잠시 멈춰 선 이들의 시간에도 부드러운 곡선의 여유가 깃들기를 바란다.
정보연 주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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