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선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한국거래소가 오는 6월 말 시행을 추진하고 있는 '거래시간 연장(6시간30분→12시간)'과 관련해 거래소 직원들과 이 증권사 노조 간 고성이 오고 간 겁니다. 거래소의 일방적인 설명회에 노조 측에선 "근로조건 변경 사항은 노조위원장의 권한 사항"이라고 맞섰습니다.거래소는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거래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증권가에선 거래소가 결론을 정해둔 채 형식적 의견 수렴 절차만 밟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시스템 개발, 리스크(위험) 관리 측면에서 시간을 더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래소는 앞서 계획한 6월 말부터 시행하겠다고 못을 박은 상태입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주부터 주요 증권사들의 전산·업무개발 담당자들과 잇따라 면담이나 유선 연락으로 접촉하며 각사의 '12시간 거래' 참여 의사와 준비 상황 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거래소는 최근 기존 정규장(오전 9시~오후 3시30분)의 앞뒤로 프리·애프터마켓을 개설해 '12시간 거래 체계'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홍콩 등 전 세계 주요국이 24시간 거래 체계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한국 시장도 흐름을 따라가겠단 취지입니다.
증권사 직원들은 거래시간 연장에 대해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증권사들이 거래소의 회원사인 데다 업계가 서로 경쟁을 하는 입장인 만큼 몇 곳만 참여 의사를 밝혀도 전체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거래소의 의견 수렴이 요식 행위에 그쳤단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거래소는 앞서 지난해 7월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거래시간 연장형태 △미체결 호가 이전 여부 △노무 부담 △IT 시스템 개발기간 등 내용과 관련해 의견을 공식으로 받았고, 증권사 51곳 중 41곳이 설문에 답변(복수 응답 가능)했습니다.
한경닷컴이 입수한 '한국거래소 거래시간 연장 추진안'에 따르면 '정규장 시간 자체를 1시간 앞당기는 안'이 48.8%(20곳)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미체결 호가를 정규장으로 이전하는 형태로 프리·애프터 마켓을 개설하는 안'이 31.7%(13곳)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미체결 호가를 정규장으로 이전하지 않는 형태로 프리·애프터 마켓을 개설하는 안'은 9.8%(4곳)으로 꼴찌였지만 거래소는 이 방안을 채택했습니다.
결국 거래시간 연장 형태와 호가 이전, 노무 우려, 시스템 개발 기간 등 설문을 벌인 대부분 항목에서 증권사들 의견이 반영된 건 없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거래소는 "업계와 노동조합의 강한 지지로 이 안을 채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초 '호가 이전' 방식이 채택됐다면 거래소가 호가 이전 시스템을 새로 개발해서 회원사의 호가(미체결분)를 옮겨줘야 합니다. 하지만 '호가 미이전' 방식으로 결정된 만큼 모든 증권사들은 저마다 자체적으로 호가를 취소하고 다시 투자자들의 주문을 내야 합니다.
증권사들은 당황한 기색입니다. 업무가 가중되는 구조인데도 거래소가 "시간을 더 달라"는 요구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사들은 프리마켓(오전 7시~8시)과 애프터마켓(오후 4시~8시)을 새로 만들기 위해 이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데 6월 말까지 일정을 맞추기엔 촉박하다는 주장입니다. 더군다나 정식 개장 전 모의시장이 다음달 16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어서 사실상 증권사에 주어진 시간은 한 달가량입니다.
한 대형 증권사의 전산 담당자는 "주식시장과 금융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화인데 주어진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며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범 운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달라는 건데 이것조차 안 된다니 답답한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중형 증권사 담당자는 "넥스트레이드가 처음 만들어진 뒤에도 '거래소 7분 먹통 사태 '가 발생했고 각종 증권사에서 전산사고가 잇따랐다"며 "이렇게 급히 만들다가 사고가 생기면 책임소재는 어디에 물을 건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거래소가 기존 계획을 강행할 경우 기술적 우려도 제기됩니다. 거래소가 신설할 프리마켓이 오전 8시에 끝나면 곧바로 넥스트레이드 프리마켓(오전 8시~8시50분)이 시작됩니다.
이때 거래소에 들어갔던 주문들 중 체결되지 않은 잔량을 넥스트레이드로 넘겨줘야 하는데 단 1분의 '버퍼' 구간도 없으니 증권사들로선 "호가를 이전할 시간을 10분은 달라"는 주장입니다.
대형 증권사 한 담당자는 "증거금 해지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시간을 안 주면 수십 만 건의 주문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냐"며 "증권사에서 못 하면 투자자들이 직접 재주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12시간 거래가 증권사들의 자율이라는 입장입니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전날 "넥스트레이드와도 동등한 경쟁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 왜 우리는 6시간 반 밖에 거래를 못 하나"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어 "거래소의 회원이 될지 말지는 증권사들의 선택이고 스스로의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정 이사장은 '동등한 경쟁 환경'을 강조했지만, 업계는 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의 소통 방식엔 차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넥스트레이드의 경우 2024년 4월 초 회원사 설명회를 시작으로 약 1년간 의견 청취, 시스템 구축, 모의시장 운영을 거쳐 2025년 3월 출범했습니다. 반면 거래소는 모의시장 개시까지 한 달, 정식 시행까지 불과 5개월을 남겨두는 일정으로 추진안을 발표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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