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의 주인은 아티스트와 팬입니다. 연출가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제 역할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잘 받아서 증폭시키는 겁니다. 신호 발생기가 아닌, 증폭기인 거죠."
2002년 연출가로 공연계에 첫발을 들여 이소라·싸이·윤하·백예린·권진아·전소미·박재범·다이나믹듀오 등 다양한 장르의 여러 가수와 호흡해 온 함윤호 라이프라이브 대표 겸 감독이 밝힌 소신이다.
함 감독은 20년 넘게 공연계에 몸담아온 잔뼈 굵은 연출가다. 2002년 정재형 콘서트를 시작으로 2003년 싸이의 대표 브랜드 공연인 '올나잇 스탠드', 2005년 이소라 콘서트를 거쳐 현재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윤하, 백예린, 권진아까지 다채로운 공연을 만들어오고 있다.
"작년에는 (일을) 적당히 했다"고 말한 그였지만, 지난해 작업물만 두고 봐도 포트폴리오는 굉장히 풍성했다. 윤하의 KSPO돔(올림픽체조경기장) 콘서트 피날레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연말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무려 5일에 걸쳐 진행된 권진아의 소극장 콘서트도 알차게 꾸렸다.
함 감독은 "요즘 함께하는 아티스트가 윤하, 백예린, 권진아, 전소미 등이라 여자 솔로 전문이라고 소문이 나 있다. 이전에 박재범, 다이나믹듀오, H.O.T. 공연을 할 때는 그분들이 다 회사 사장이라 사장님 전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싸이를 할 때는 크고 이상한 공연 전문이었고, 드렁큰타이거, 리쌍, 윤미래, 비와이, 로꼬 등의 공연을 할 땐 힙합 전문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할 때마다 전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을 스스로 "어떤 것에도 전문이 아닌 전문 연출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을 한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재미있다. 동시에 공연은 늘 어렵고 생각한 대로 잘 안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루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연계와 연이 닿은 건 2000년대 초반, 대학교 3학년 시절이라고 했다. 당시 함 감독은 이소라 콘서트장에서 야광봉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이듬해 연출기획팀 보조 스태프로 합류했다.
함 감독은 "야광봉을 팔다가 그다음 해에는 대기실 문을 두드리고 스탠바이 시키는 크루를 한 거다. 이소라 씨의 팬이라서 일부러 이쪽 일을 한 것도 있다"면서 "스탠바이 콜을 할 때마다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면서 칭찬을 해드렸다. 감히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며 웃었다.
그렇게 이소라에게 '얼굴을 아는 사람'이 된 함 감독은 약 1, 2년 뒤에 콘서트 연출 회의 자리까지 가게 됐다. 그때 자리는 당연히 구석이었다. 하지만 구석진 자리에서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함 감독은 "아무도 말을 안 하는데 '이때는 이 노래가 더 좋을 것 같다'면서 아이디어를 냈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기회를 얻게 되더라"고 전했다.
2005년 마침내 이소라 콘서트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한 단계 쌓게 됐다. 함 감독은 "그때가 20대 후반이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시기였고, 이소라 씨가 이미 너무 대단한 사람이었다. 내 능력보다 훨씬 사이즈가 큰 공연이었다. 그냥 죽기 살기로 했다. 그 공연을 계기로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함 감독이 연출한 공연에는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아티스트의 장점과 색깔이 명확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최근의 작품만 봐도, 권진아의 연말 콘서트는 그녀 고유의 음색과 목소리의 힘이 도드라지는 방향으로 미니멀하게 꾸며졌다. 윤하의 KSPO돔 공연은 여성 솔로 가수 역대 6번째 입성이라는 규모가 지닌 상징성, 데뷔 20주년이라는 서사를 적절하게 녹여내 호평받았다.
함 감독은 "아티스트랑 팬이 한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연출해주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서 "이 개념에서 보면 아티스트와 팬이 같이 있는 공간과 일정 시간이 있고, 그 안에 음악이 존재한다는 점은 전부 같다. 결국 어떤 가수든지 공연을 만들 때 고민의 방향은 똑같다. 그 고민은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매력은 무엇인지, 팬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인 거다"고 설명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단단한 뚝심이 느껴졌다. 철저하게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무대 위를 빛내겠다는 철칙과 신념이 빛났다. 더 구체적으로 결과물을 빚어가는 과정에 관해 묻자 지난 권진아 콘서트를 언급했다. 당시 공연에서는 권진아가 직접 기타를 연주하는 무대의 비중이 컸다. 드럼, 건반, 베이스로 간소화한 밴드 구성에 직접 권진아가 기타로 참여하는 형식이었다.
함 감독은 "권진아 씨가 처음 만난 날 바닥에 앉아서 기타를 쳤다. 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저 사람은 꼭 기타를 쳐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기타를 친다면 그 분량을 줄이지 말라고 얘기했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도 분량을 줄이지 말라고 했다. 기타 치는 모습에 반한 관객들이 많지 않나. 그런 걸 발견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윤하의 KSPO돔 공연 비하인드도 빠질 수 없었다. 윤하와는 유독 인연이 깊다. 약 10여년 전 합정동에 있는 소극장 콘서트를 함께 했던 이들은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KSPO돔까지 같이 성장사를 썼다.
함 감독은 "윤하 씨가 아티스트로서 써가는 스토리가 있지 않나. 앨범이 나올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아티스트와 공연에 제일 좋은 증폭이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열심히 하다 보니까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했고, KSPO돔까지 골인하게 됐다. 다 아티스트가 이루어낸 결실"이라면서 "KSPO돔 입성에 맞춰 20주년 공연을 하게 된 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은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함 감독은 20주년이라는 서사에 맞춰 파동, 궤도, 나이테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목소리를 통해 퍼지는 윤하라는 가수의 영향력, 그녀가 걸어온 길 등을 이미지화한 것이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윤하의 목소리를 가장 또렷하게 잘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내 대중음악 공연 최초로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함 감독은 "대단한 연출을 할 게 아니고, 몰입형 사운드 시스템을 가지고 윤하의 음악을 온전하게 느끼게 해주자고 제안했다. 소극장에서 체조경기장까지 간 거라 저도 연출가로서 욕심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가장 기분 좋고, 감동할 만한 윤하의 20주년 공연을 생각했다. 핵심은 사운드일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장의 어느 위치에서든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객석 위치와 상관없이 동일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이라면서 "비용도 3배 이상 더 들었고, 엔지니어들이랑 사운드 시뮬레이션도 계속 돌리고, 또 경기장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체크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공연이 잘 끝났다.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며 흐뭇해했다.

함 감독과의 대화에서 느껴진 또 다른 것들은 열정, 그리고 사람 냄새였다. 앞서 윤하는 공연 후기를 전하면서 함 감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면 세세히 대답해준다'면서 현장은 꿈을 꾸는 눈빛들로 가득하다고 전한 바 있다.
이는 '좋은 공연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다.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공연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 많은 세상을 만든다'라는 라이프라이브의 사훈과도 맞닿는 지점이다.
함 감독은 "공연을 잘하고 싶어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장르의 콘텐츠, 미술, 패션, 건축을 다 공부한다. '사람들이 저걸 왜 좋아할까'를 생각해본다.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를 보며 '이게 왜 명상적일까'를 한참 생각하고,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서 여백과 관계의 미학을 고민해 보는 식"이라고 말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기회·승리·기쁨, 위기·패배·슬픔의 영역으로 나눠 시간 단위로 쪼개 분석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에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습득하고 깨달으며 한 발 더 나아가려는 연출가로서의 자세가 압축된 한 컷이었다.

"타성에 젖은 스타일로 공연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전 노하우라는 말을 싫어해요. 노하우라는 말이 '꿀팁'처럼 느껴지잖아요. 누군가 '세트리스트를 잘 짜는 노하우가 있냐'고 물으면 '그렇게 짜면 안 된다. 노하우로 하는 게 아니고, 고민을 갖고 하는 거다'라고 답합니다. 끝까지 몰입해서 재미있게 공연을 보게 하는 게 목적이고, 그것이 끝났을 때 관객들이 어떤 여운과 즐거움을 갖고 나갈지를 생각합니다. '걔네가 제작하면 더 기대된다'는 말. 그게 목표입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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