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관계자는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북 현안과 관련해 “며칠 내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북·미 대화와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 단초가 될 수 있는 성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제재 면제를 승인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美 행정부, 제재 완화 첫 신호…WHO·유니세프 등 17건 승인
6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그동안 보류해 온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 대해 제재 면제 조치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인도적 지원 물자의 전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제재 면제 심사에 반대하면서 위원회 절차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2006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설립된 대북 제재 이행 감독위원회는 14개 이사국의 전원 합의 방식으로 인도적 지원 허용 여부 등을 심사한다. 현재 경기도가 추진하는 대북 지원사업 3건과 민간단체 사업 2건 등 국내 사업 5건을 비롯해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와 해외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사업 12건 등 모두 17건이 제재 면제 허가를 신청했다.
미국을 포함한 14개 이사국이 모두 동의한 만큼 조만간 공식 의결 절차를 거쳐 제재 면제가 확정되고, 관련 사실이 각 사업 기관에 공식 통보될 전망이다. 사업 규모는 건당 수십만달러(수억원) 수준으로 비교적 소규모이며, 인도적 식량 지원과 의료 분야 사업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따라 인도적 지원이 잘 이뤄지도록 애써왔다”며 “이번에 (북한의) 호응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오는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미·북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전향적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회담한 조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제재 면제를 제안하고 그 취지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한국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미국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를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대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관영 매체 등을 통해 드러날 북한의 공식 반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인도적 지원 허용은 북한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외국인의 북한 관광지 방문 확대나 민간 협력 사업 등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제재 완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파키스탄 사례처럼 점진적 제재 완화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경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집행 단계로 이어지고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사실상 차단한 데다 인도적 지원마저 받아들이지 않아 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4월 중국 방문을 전후로 당장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미·북 대화 국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거론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이번 조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유화적 조치”라며 “지난해까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 등을 분석하면 북한은 미·북 대화를 위해 더 큰 틀에서의 미국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이현일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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