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팀장 4년차인 'X세대' 김 팀장은 신입사원 민우씨와 9개월째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민우씨는 평소에 말이 많지 않고, 부탁을 하거나 다시 해오라고 하면 짧게 알겠다고만 답합니다. 이제까지 경험했던 다른 신입들보다는 업무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팀장은 민우씨에게 “모르면 물어봐”, “추측으로 답변하지 말고 예전 문서나 보고서를 찾아보거나 지침, 데이터로 보고해 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특히 다시 해오라고 지시한 업무가 두세 번 반복되다 보면, 민우씨가 지시한 내용을 이해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반영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요즘은 “내 말 이해한 거 맞아? 이해가 안 된 부분이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말고 지시한 걸 메모해”라고 다그치듯 말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민우씨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지적할 때 웃으면서 대답은 잘했던 민우씨가 표정이 좋지 않고, 대화 후에는 늘 자리를 비웁니다. 질문은 오히려 더 줄었고, 소통의 기회와 타이밍은 갈수록 어려워만 집니다. 예전 같으면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속마음을 들어볼 수라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참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던 중 전임자인 오대리와 민우씨가 사내 카페에서 대화를 한참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 날 오대리에게 살짝 물어보니, 민우씨가 뭐가 불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김 팀장이 민우씨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할 수는 있지만 매번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서 하니까 자신이 너무 무능한 신입이라 소문이 날 것 같고, 그러다보니 더 질문을 못 하겠는데 팀장님은 자꾸 모르면 질문하라고만 하니까 위축감이 든다고 했답니다. 오대리와 비교하는 것도 수치스럽고, 특히 얼마 전 “네 생각 따위는 필요없어. 데이터로 말하라고”라고 했다던데, 약간 언성이 높이기는 했지만 워딩도 좀 다르고, 비난하려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인격 모독’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고 하니, 이러다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심장이 덜컹합니다. 먼저 찾아가서 오해를 풀어야 할지, 차라리 앞으로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인지 고민이 됩니다.
<i>#직장 내 괴롭힘과 정당한 업무 지시의 경계</i>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통해 판례가 직장 내 괴롭힘과 정당한 업무 지시의 경계를 어떻게 나누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팀장급 상급자가 부하 직원의 업무 결과물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부정적 피드백을 하며 여러 차례 재작성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면담 중 “이런 식으로 일하면 같이 일하기 어렵다”, “역량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상급자가 하급자의 업무수행 내용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상급자의 지휘·감독 권한에 기한 당연한 책무이다. 설령 하급자가 그 과정에서 주관적인 불쾌감을 느꼈더라도, 업무상 필요성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단정할 수 없다.(서울행정법원 2021구합74121 판결)”고 하여 질책의 내용이 정당하다면 방식이 조금 엄격하더라도 상사의 권한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공개적인 방식이 과연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민우씨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를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개적인 지적방식 그 자체는 사람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고, 업무적 지시라기보다 비난과 모욕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조사와 판단 과정에서 인격적 비난이나 모욕은 면밀하게 살펴 최종 판단을 하게 되지만, 그보다 먼저 느끼는 민우씨의 ‘피해 감정’이라는 것은 판단 결과보다 먼저 발생해 버린 결과이니까요. 민우씨 입장에서는 어떻게 들릴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네 의견은 필요없어"만 남고 이유나 설명이 사라지면 민우씨에게는 부정적 감정만 남을 수 있습니다. 업무상 잘못을 비판하더라도 그것이 상대의 인격 그 자체를 비하하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거나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모욕적 언사는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서 인격권 침해로 판단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i>#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전달하느냐</i>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지 않더라도,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지적은 업무적 훈계가 아닌 '비난'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네 의견은 필요 없어"라는 단정적인 표현은 그 뒤에 붙을 합리적인 이유를 가려버리고 모멸감만 남깁니다. 인격적 비하로 비춰질 수 있는 언행이나 공개적인 망신은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 '인격권 침해'로 판단될 소지도 있고, 무엇보다 부정적 감정을 남기게 됩니다.
<i>#신입사원이 '질문'을 멈춘 진짜 이유</i>
상사들은 질문하지 않는 주니어를 보며 답답해하지만, 그 원인을 단순히 '무능함'이나 '태도'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사람보다 검색이 편한 세대에게 '질문'은 타인의 시간을 뺏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모르면 물어보라"는 것 역시 자신의 무능을 전제하게 됩니다. 나아가 물어봤을 때 "그것도 몰라?"라는 핀잔이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면 이들은 소통을 '비효율적인 리스크'로 규정하고 입을 닫아버립니다. 심리적 안전감이 사라지고 나면 질문하기를 멈추고 맙니다.
<i>#"자료로 말하세요. 개인적인 생각은 보고서에 필요 없습니다"</i>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상사와 이를 인격적인 거부로 받아들이는 부하 직원 사이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나 건강한 의사소통으로 이어지지 않고 괴롭힘 신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단 기준은 좀 더 명확해지고 있고, 감정적 불쾌감은 괴롭힘이 아니지만, 회사 내 소통까지 바꾸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네 의견은 필요 없어"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팀의 보고 기준은 데이터입니다. 주관적 견해는 데이터나 지침을 근거로 종합적으로 제시하십시오"라고 말하십시오. 지적하고자 하는 지점을 인격이 아닌 '기준'으로 옮기는 순간, 지시의 권위는 살아나고 법적 리스크는 사라집니다. 부하 직원이 질문을 했을 때, "그걸 왜 이제 물어?"라고 다그치는 대신, "지금 물어봐 줘서 다행이다. 덕분에 리스크를 줄였네"라고 반응하십시오. 질문이 환영받고, 답변이 반영되는 경험이 쌓여야 소통의 물꼬가 트입니다.
박윤진 행복한일노무법인 공인노무사/고충예방센터장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