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정계가 미성년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맨델슨 스캔들'로 격랑에 휩싸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피터 맨델슨 전 주미 대사를 임명했던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맨델슨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수사의 칼끝을 겨누자 정권 퇴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BBC 등 현지 외신에 따르면 런던 경시청은 피터 맨델슨 경의 윌트셔와 런던 캠던 자택 두 곳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경찰 당국은 성명을 통해 "공직자로서의 부정행위 혐의와 관련해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맨델슨 경은 체포되지 않은 상태이나, 경찰이 강제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그는 엡스타인과 친분을 유지하며 거액을 수수하거나 정부 기밀 정보를 넘겼다는 의혹을 받아왔으며, 파장이 커지자 노동당을 탈당하고 종신 귀족으로서 누리던 상원의원직에서도 사임했다. 그러나 최근 엡스타인 파일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잠잠해지던 의혹에 다시 불이 붙었다.
공개된 이메일에는 맨델슨이 엡스타인에게 정부 내부자만 알 수 있는 민감한 정보를 공유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영국 정부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던 '유로존 국가 구제금융(bailout)' 계획과 당시 기업부 장관 시절 다루던 '정부 자산 매각' 관련 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BBC는 맨델슨이 정부 공식 이메일이 아닌 개인 이메일(BT internet)을 사용해 교묘히 감시망을 피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단순한 친분을 넘어, 국가 기밀을 사적인 관계에 이용했다는 의혹이 구체화된 것이다.
사태가 악화되자 스타머 총리는 5일 "맨델슨이 엡스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는 "지금 아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야당인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가 즉각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노동당 내부에서조차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타머 총리의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고,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총리의 '판단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스타머 총리가 당장 물러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BBC의 닉 어들리 수석 정치 특파원은 "노동당의 당규상 당 대표 교체 절차가 보수당보다 훨씬 까다롭고, 웨스 스트리팅이나 앤절라 레이너 등 잠재적 후임자들도 각자의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어 대안이 마땅치 않다"고 분석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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