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전체 기자의 3분의 1을 한꺼번에 해고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가운데, 이를 주도했던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사임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지 13년 만에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WP가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 위기와 내부 혼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윌 루이스 WP 발행인 겸 CEO는 전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 4일 뉴스룸 기자 800명 중 300명 이상을 해고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루이스 발행인은 "2년에 걸친 변화의 시간을 거친 지금이 내가 물러나기에 적절한 시점"이라며 퇴진을 알렸다. AP통신은 후임으로 PAP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WP는 비용 효율화를 위해 스포츠면과 신간 소개(북섹션) 부문을 폐지하고, 팟캐스트 '포스트 리포트' 운영도 중단했다. 대신 경쟁력 있는 국내 뉴스와 정치, 경제, 건강 관련 기사 등 핵심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루이스 발행인 역시 사임 전 "WP가 오랫동안 수백만 독자에게 수준 높은 '비당파적 뉴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항변했다.
국제 보도 부문도 축소된다. 외신에 따르면 WP는 기존 26개였던 해외 지국을 12개로 통폐합했으며,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을 취재하던 특파원들까지 해고 통보를 받았다.
루이스 발행인은 고별사에서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에게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재임 기간 지원과 리더십을 보여준 베이조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WP는 그보다 더 나은 소유주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정작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WP 기자들과 구성원들에게는 별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일각에서는 베이조스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친(親)트럼프' 노선으로 기운 것이 경영 악화를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WP는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지지 사설을 준비했으나 발행하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독자 20만 명이 구독을 해지하는 등 역풍을 맞은 바 있다.
특히 시위대는 루이스 발행인과 베이조스 의장이 해고 발표 당시 직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그들은 겁쟁이(Cowards)"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AP통신 역시 루이스나 베이조스가 감원 소식을 알리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우크라이나에 고립된 뛰어난 기자들과 신문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기자들을 버렸다"며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론지로 꼽히던 WP가 빅테크 자본에 인수된 지 13년 만에 명성과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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