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석유국가(petrostate) 대신 전기국가(electrostate)가 될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21세기의 전력’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이렇게 전망했다. 예언은 5년 만에 현실이 됐다. 지난해 중국은 세계 최초의 ‘전기국가’가 됐다.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다.시작은 에너지 안보였다.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아 미국 해군 영향력 아래에 있는 믈라카 해협이 봉쇄되면 산업이 멈춰설 것이라는 위기감이 전기국가 전략의 배경이 됐다. 중국은 더 나아가 전기화를 산업 구조 혁신과 경제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단순히 국내에서 전기를 많이 쓰는 것을 넘어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전력반도체, 히트펌프 등 전기화 기술을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생산자’가 됐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전기차를 포함한 대부분 분야에서 중국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50%를 넘어선다. 2024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청정에너지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돌파했다. 성장률 기여도는 26%에 달했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청정 기술 분야가 없었다면 2024년 중국의 성장률은 5%가 아니라 3.6%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을 전기를 많이 쓰는 ‘소비자형 전기국가’가 아니라 전기화 기술을 세계에 공급하는 ‘생산자형 전기국가’로 규정했다. 한국은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2%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소비자형 전기국가로 가고 있지만 생산자로서 역할은 미미하다. 2024년 한국의 녹색산업 수주·수출 실적은 22조7000억원으로, GDP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도 전기화 기술을 고도화하고 공급망을 구축해 포스트 오일 시대 산업 패권을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한 설계도가 정부가 상반기 내놓을 한국형 녹색전환(K-GX) 로드맵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한국이야말로 생산자형 전기국가에 최적화된 나라”라며 “K-GX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차기 성장 전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中, 세계 첫 '전기국가'…글로벌 산업지형 바꾼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이미 중국이 장악했다. 시장조사업체 PV인포링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태양광 모듈 수출량은 235.93기가와트(GW)로 압도적 1위다. 브라질,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주요 수입국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 나라들을 ‘소비자형 전기국가’로 분류했다. 제조는 중국에 맡기고 값싼 청정기술을 활용해 전기화를 빠르게 달성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제조 경쟁력을 가진 국가가 소비자형 전기국가에 머무를 경우다. 탄소 배출은 줄어도 산업 주도권이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청정기술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비중은 약 0.9%로 추산된다. 태양광 분야에서는 중국산에 잠식되며 한화솔루션이 2024년 충북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원전은 한국형 노형을 앞세워 아랍에미리트(UAE)와 체코 수출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해상풍력 역시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을 바탕으로 한 저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11년 전 아시아 최초로 도입한 배출권거래제(ETS)와 녹색·전환금융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전략의 본질은 태양광 셀이나 배터리를 많이 만든 데 있지 않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를 통해 청정기술을 정보통신기술(ICT)·반도체·자동화·정밀제조와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기술 퍼즐로 키운 데 있다.
태양광 밸류체인을 장악하며 중국이 확보한 진짜 경쟁력은 패널 조립이 아니라 인버터·직류-교류(DC-AC) 전력변환·전력반도체로 대표되는 전력전자 기술의 수직계열화다. 이 전력전자 역량은 에너지산업을 넘어 군사용 드론, 휴머노이드·산업용 로봇, 전기차 구동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전기화산업 전반으로 확장된다.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가 군사용 드론에 쓸 자국 배터리·전력제어 생태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에너지·환경정책연구센터(CEEPR)는 중국의 청정에너지 기술 선점을 단순히 환경 정책의 성공으로 치부하지 않고 국가 전체의 첨단 기술 경쟁력과 제조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거대 전략의 결과물로 봤다.
▶전기국가(electrostate)
석유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 기존 ‘석유국가’(petrostate)와 달리 태양광, 풍력, 원자력 등 청정에너지 기술로 전기를 생산해 쓰고 전기화 기술을 수출하는 국가.
김리안/김대훈/하지은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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