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를 결합한 ‘피지컬 AI’ 기업으로의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에선 구글의 로보택시 자회사 웨이모에 5만 대 규모 아이오닉 5 자율주행차 공급을 추진한다. 휴머노이드에선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BD)의 ‘아틀라스’ 실전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 로봇, 제철 등 현대차그룹 산하 기업들이 현장에서 쏟아내는 방대한 데이터를 앞세워 구글, 엔비디아 등 빅테크들을 ‘현대차그룹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웨이모 ‘아이오닉 5’ 탄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2028년까지 웨이모에 아이오닉 5 기반 6세대 자율주행 차량 5만 대를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 대당 가격이 5만 달러 안팎으로 추정되는 만큼 자율주행 분야에서 25억달러(약 3조6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웨이모는 최근 기업가치를 1260억달러(약 184조원)로 인정받아 조달한 160억달러(약 23조원)를 자율주행차량 구입 등에 쓰고 있다. 웨이모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6개 도시로 한정된 서비스 지역을 연말까지 미국 대도시 전역과 영국 런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로봇에서도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하는 로봇 AI 파운데이션 모델 ‘제미나이 로보틱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만든 ‘몸체’에 구글의 ‘머리’를 심는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로봇 전용 훈련 거점인 로봇메타플랜트 응용 센터(RMAC)와 실제 공장에서 확보한 행동 데이터를 AI 모델에 학습시키고, 이를 다시 로봇 본체에 적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구글이 현대차와 손잡은 것은 방대한 실제 데이터와 대량 생산 능력 때문이다. 구글은 딥마인드의 추론 모델 ‘제미나이 3’와 월드모델 ‘지니 3’ 등 두뇌(소프트웨어)는 갖췄지만, 현실에서 구현할 기계(하드웨어)가 없다. 제조 능력과 현장 데이터를 보유한 현대차에 손을 내민 이유다.
◇ 자율주행은 엔비디아와 ‘깐부’
자율주행 기술 파트너는 엔비디아다. 현대차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 5만 개를 확보한 데 이어 지난달 엔비디아 출신인 박민우 박사를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사장)으로 선임해 자율주행 사업을 맡겼다. 현대차는 자체 자율주행 기술인 ‘아트리아 AI’와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개발 솔루션 ‘알파마요’를 적절하게 조합해 성능 좋은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마요는 인간과 유사한 단계적 추론 방식인 ‘생각의 사슬(CoT)’ 기법을 도입해 주행 판단의 근거를 인간 언어(자연어) 설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그만큼 자율주행 오류를 잡아내기가 쉽다. 여기에 초정밀 가상 세계인 ‘알파심’으로 각종 돌발 상황을 반복 학습하는 식으로 개발 비용을 줄이고 시간도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 로봇 파운드리로 주도권 확보
현대차는 빅테크와의 협업을 토대로 ‘로봇 서비스 생태계’를 판매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 로봇 양산 체제를 구축, 다른 업체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로봇 파운드리(수탁생산) 공장’을 조성한다. 파운드리 사업을 통해 로봇 생산량을 늘려 단가를 낮추고 기술력도 끌어올린다.
아틀라스는 ‘연속 전신 제어 능력’ 안정화 단계 진입을 증명하며 상용화 기대감을 높였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날 아틀라스가 옆돌기와 백 텀블링(뒤로 돌기)을 연속으로 수행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아틀라스가 옆으로 돌고 백 텀블링하는 모습을 각각 선보인 적은 있지만, 체조 선수처럼 연속 동작으로 구현한 건 처음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아틀라스 연구용 버전 성능 테스트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2028년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장 투입을 목표로 실전 훈련에 들어가기로 했다.
양길성/김보형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