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날 때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는 큰 변화가 뒤따랐다. 2021년 5월에도 그랬다. 엔비디아 미국 본사에서 두 거물이 만난 직후 두 회사와 대만 파운드리기업 TSMC가 원팀으로 묶여 ‘인공지능(AI) 3각 동맹’을 구축했다.
지난 5일 실리콘밸리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치킨 회동’에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SK하이닉스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데 속도가 붙는 것은 물론 SK의 실리콘밸리 자회사 ‘AI 컴퍼니’를 통한 기업용 데이터저장장치(eSSD)와 AI 데이터센터 구축 솔루션 공급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HBM 생산(4개월)과 TSMC의 패키징(약 2~3개월)에 6~7개월이 걸리는 만큼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업계 최대 HBM 생산능력(2025년 기준 웨이퍼 투입량 월 15만 장)을 갖춘 SK하이닉스의 원활한 HBM4 납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HBM 시장 판도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용 HBM3E 12단 물량을 사실상 독식한 지난해와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9월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데 이어 이달 업계 최초로 HBM4 양산·출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HBM4의 속도는 초당 11.7기가비트(Gb)로, 엔비디아 요구 수준(초당 10~11Gb)을 웃도는 것으로 파악됐다.SK하이닉스는 작년 말 엔비디아와 HBM4 필요 물량의 ‘55% 이상’을 공급하기로 하고, 현재 성능 최적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의 HBM4는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10㎚ 6세대(1c) D램 등을 쓰는 삼성전자보다 한 세대 이상 뒤처진 공정(12㎚ 파운드리, 1b D램)을 사용하면서도 비슷한 성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이날 만남에서 황 CEO에게 ‘차질 없는 공급’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7년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7세대 HBM(HBM4E)과 맞춤형 HBM(cHBM)에 대한 논의도 오갔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eSSD 관련 추가 협력 여부도 관심사다. 엔비디아는 지난 1월 “베라 루빈에 새로운 메모리 솔루션 ‘ICMS’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베라 루빈 풀 세트엔 9600테라바이트(TB) eSSD가 들어간다. 기존 제품 대비 수요가 16배 늘어나는 셈이다. AI 데이터센터 설계부터 반도체·서버 납품까지 SK그룹의 AI 종합 솔루션을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황정수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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