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기후헌법소원 소송단과 대리인단이 국회가 추진 중인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공론화 절차를 전면 재검토·재설계할 것을 촉구했다.
청소년·시민·아기 기후소송단과 대리인단은 11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공론화가 졸속으로 진행될 우려가 크고, 헌재 결정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며 의제 설정, 참여 구성, 자료 검증, 숙의 기간 및 운영 원칙을 헌재 결정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 29일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30년 이후 2050년까지의 장기 감축경로를 법률로 규정하지 않은 점이 미래세대의 기본권(환경권 등) 보장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회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해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한국이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고,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는 장기감축경로(2031~2050)를 마련해 법률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소송단과 대리인단은 현행 공론화 추진안으로는 ‘제대로 된 숙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론화가 2개월 내외의 촉박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데다, 자문단 구성 역시 감축기술 중심이거나 산업계 이해에 편향된 인사가 다수 포함될 수 있는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의제 설정을 담당하는 ‘의제숙의단’에서 산업계가 과대 대표될 경우, 2035 NDC 수립 과정에서처럼 ‘산업계 부담’ 프레임이 과도하게 작동해 기후과학과 국제 권고 수준에 부합하는 목표 설정을 다시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 양은 “어린이와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세대”라며 “지금의 결정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삶까지 바꾸는 문제인 만큼 공론화 과정에서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 기후소송 청구인을 대표한 김은정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위원장은 “헌법불합치 결정은 기후위기가 ‘헌법적 권리’의 문제이며 그 권리 주체로 후발세대를 분명히 한 전환적 선언”이라며, “국회 공론화는 이같은 헌재 판결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시간이 돼야 한다. 국회가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어설픈 선택지를 놓고 시민을 거수기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청소년기후행동 김보림 활동가는 “지금 국회가 하는 공론화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국회는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만 하면서, 또 다시 뒤로 모든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기후 헌법소원 결정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국회가 지고 있는 책임이다. 의제 숙의단계부터 산업계가 과대 대표되는 지금의 방식은 헌재가 경고한 '미래세대에 대한 과중한 부담 이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기후소송 대리인단 플랜 1.5 최창민 변호사는 “1.5도 목표 부합도가 20%에 불과한 2035 NDC를 설정한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 국회 공론화는 이미 확고히 정립된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에 근거하여 국가 간, 세대 간에 공정한 장기감축경로를 마련할 수 있도록 의제, 일정, 자료 등을 충실하게 설계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단과 대리인단은 ▲충분한 숙의 기간 확보 ▲헌재 결정의 틀 안에서 의제 설정 ▲기후위기 당사자·미래세대 참여의 실질적 보장 ▲공론화 자료집·기초자료 제작 과정의 투명한 공개 및 독립적 검증 절차 마련 ▲공론화 이후 국회의 책임 있는 입법 이행 등을 요구했다.
또한 이번 공론화가 2050년까지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과 시민의 기본권 보호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과정인 만큼, 졸속 공론화로 흐르지 않도록 시민사회와 함께 공론화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헌법재판소 결정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다각도의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월 3일 출범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국가 기후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구성된 자문기구다.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0일 2차 회의를 열고, 전체 추진 일정과 시민대표단·의제숙의단 구성 방안 등을 논의했다. 시민대표단은 시민 300명과 미래세대 시민대표단 40명으로, 의제숙의단은 자문단과 부문별·세대별 추천인 등을 포함해 총 40명 내외로 구성될 예정이다. 본회의는 3월 28일부터 총 4차례 KBS 방송을 통해 진행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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