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12일 07:0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고려아연 정관에 넣어 명문화하자고 제안했다. 신주 발행 시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도 정관을 개정해 반영하자고 건의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우군에게 고려아연 지분을 획득할 기회를 제공하는 식의 방어 전략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주식 액면분할도 제안했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 연합은 다음달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날 고려아연 측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을 했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개최 6주 전 접수돼야 해당 안건이 주총에서 논의될 수 있다. MBK 연합은 고려아연 정기 주총이 3월 말 열린다는 점을 고려해 주주제안 접수 마감일을 앞두고 회사에 주주제안을 보냈다.
MBK 연합의 이번 주주제안은 단기적인 경영권 분쟁이나 이사회 구성원 교체보다는 구조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정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MBK 연합은 고려아연 정관에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문화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를 기업 정관에 직접 반영하자는 게 MBK 연합 측 요구다. 대주주가 정기 주총 안건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정관에 반영하자고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법상 이미 존재하는 의무지만 이를 정관에 명시하는 이유는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할 때 주주 충실의무가 보다 구체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사회가 주주 충실의무를 위반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이사회 결의의 적법성을 판단할 때도 정관에 이를 명시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한 대형 로펌의 상법 전문 변호사는 "상법상 충실 의무는 경영 판단의 원칙 아래 폭넓게 해석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정관에 명시할 경우 이사회의 책임과 의무의 강도가 달라진다"며 "이사회 구성원들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게 억제하는 실질적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MBK 연합은 신주 발행 시 이사회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도 정관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최 회장은 2024년 말 MBK 연합을 견제하기 위해 2조5000억원 규모의 '폭탄 유증'을 추진하다가 금융감독원의 제동으로 이를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지난해 말엔 미국 현지 제련소 건립을 위해 합작법인(JV)을 만들고, JV가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식으로 우호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지분을 늘렸다. MBK 연합은 최 회장이 유상증자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걸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정관 변경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MBK 연합은 집행임원제 도입도 함께 제안했다. 집행임원제는 이사회와 경영진을 분리하는 제도다. 집행임원제가 도입되면 이사회는 경영진 관리·감독에 집중하고, 집행 임원이 경영을 도맡게 된다. MBK 연합은 독립적 감시 기능을 상실하고,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의 역할을 회복시키기 위해 집행임원제 도입에 나섰다.
MBK 연합은 지난해 초 임시 주총 때도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내용을 정관에 명문화하고, 집행임원제를 도입하자고 주주제안을 했으나 최 회장 측 반대로 무산됐다. 다만 상법 개정이 완료된 만큼 최 회장 측이 올해도 정관 변경에 반대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투자가들도 해당 안건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주총에서 가장 치열한 표 대결이 펼쳐질 안건으로 예상되는 이사 선임에 관련해서는 새롭게 선임할 이사의 수를 이번에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숫자인 6명으로 정하고,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자고 제안했다. 이사 후보로는 최연석 MBK파트너스 파트너 등 6명을 제시했다.
현재 19명으로 구성된 고려아연 이사회는 4명이 직무정지 상태다. 나머지 15명은 '4(MBK 연합) 대 11(최 회장)' 구도다. 업계에선 6명의 임기가 만료되고, 6명을 집중투표제를 통해 새롭게 선임할 경우 현재 지분 구조상 이사회가 '6(MBK 연합) 대 1(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및 기업이 만든 JV) 대 8(최 회장)'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현지 제련소 건립을 위해 설립한 JV는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이라기보단 중립적 성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MBK 연합은 이밖에도 주주총회 의장을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회 의장이 맡도록 정관을 변경하고, 고려아연 액면가를 기존 5000원에서 500원으로 낮추는 액면분할을 통해 주식 유동성을 높이고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자고도 제안했다. 최 회장 일가로 고려아연 자산이 과도하게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퇴직금 규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안건도 주주제안에 넣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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