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이른바 '부의 대물림' 현상이 최근 세대에서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출생 환경이 경제적 지위를 좌우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저소득층 자녀들 사이에서 '가난의 대물림'이 뚜렷하게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11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지역 간 인구이동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공동으로 진행됐으며, 한국노동패널(KLIPS) 미시자료를 분석해 세대 간 경제력 이동성을 살펴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자산과 소득 순위가 자녀의 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영향력은 최근 세대로 올수록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세대 간 대물림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부모 소득 순위가 10계단 상승하면 자녀 소득 순위는 평균 2.5계단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RRS는 0.38로 소득보다 더 높아 자산 중심의 계층 고착이 더욱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세대별로 보면 이러한 흐름은 더욱 분명하다. 1970년대생 자녀의 소득·자산 RRS는 각각 0.11, 0.28이었지만, 1980년대생에서는 0.32, 0.42로 크게 상승했다. 소득과 자산 모두에서 세대 간 대물림이 강화되는 양상이다.
연구진은 지역 간 이동 여부가 세대 간 대물림을 완화하거나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자녀가 부모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교육환경과 일자리 등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함께 변화하면서 경제력이 개선되고 대물림이 완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실제로 부모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백분위는 부모보다 6.5%포인트 상승했지만, 고향에 남은 비이주 자녀는 오히려 2.6%포인트 하락했다. 이주 자녀의 소득·자산 RRS(0.13, 0.26)는 비이주 자녀(0.33, 0.46)보다 크게 낮았다.

다만 이주 효과는 출생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수도권 출생 자녀는 수도권 권역 내 이동만으로도,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계층 상향 이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나타났다. 반면 비수도권 출생 자녀는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경제력 개선 폭이 크게 확대됐고, 비수도권 내 광역 권역 내부 이동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비수도권 출생·비이주 자녀 집단에서는 가난의 대물림이 빠르게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소득이 하위 50%인 비수도권 출생 자녀 가운데 본인 역시 하위 50%에 머무는 비율은 과거 50% 후반 수준이었으나 최근 세대에서는 80%를 넘어섰다. 반대로 소득 상위 25%로 진입한 비율은 13%에서 4%로 급감해 계층 상승의 문턱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현상이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나타나는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지역 격차 확대와 사회 통합 약화, 나아가 저출생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정책 대응 방안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비수도권 거점대학 경쟁력 강화, 거점도시 중심의 산업·일자리 집중 투자 등을 제안했다.
정민수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은 "수도권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수도권 내에서 이동했을 때 저소득층 자녀를 중심으로 계층 상향 이동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반면 비수도권 출생 자녀들은 수도권으로 이주할 경우 경제력 개선이 크게 나타나지만, 권역 내부 이동에서는 효과가 축소된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근본적으로 비수도권 거점대학이 소수 분야라도 상위권 대학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비수도권 내 세대 간 대물림을 완화할 수 있도록 산업과 일자리 기반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점도시 중심의 지역 성장은 지역 간 이동성을 강화하고 계층 대물림을 완화하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는데 최근 논의되고 있는 행정구역 통합과 광역권 거버넌스 개편 역시 거점도시의 위상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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