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외화 강세 흐름에 ‘연간 누적 관객 수 1억 명’은 간신히 지켰지만, 2012년부터 한국 영화에서 줄곧 배출해 온 ‘천만 영화’(팬데믹 시기 제외)가 실종되면서 고사 위기에 내몰려야 했다. 한국 영화 중 5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은 ‘좀비딸’ 단 한 편에 불과했다.
올해는 ‘무관’의 설움을 씻겠다는 각오일까. 설 연휴 대목을 노린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연이어 출격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액션의 대가 류승완 감독의 첩보 스릴러 ‘휴민트’부터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이야기를 다룬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 엄마의 집밥을 소재로 한 가족 판타지 영화 ‘넘버원’까지. 모처럼 한국 영화의 삼파전(三巴戰)이 펼쳐진다.
실록에는 단종이 죽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단종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해선 적혀 있지 않다. 세조가 내린 사약을 마시고 숨을 거뒀다는 설도 있지만, 하인에 의해 목이 졸려 사망했다는 설, 자결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대다수가 결말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역사 속 빈칸을 상상으로 풀어내는 셈이다. ‘믿고 보는 배우’ 유해진이 엄흥도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선을 연기하고, 드라마 ‘약한영웅’ 시리즈로 주목받은 배우 박지훈이 단종 역으로 출연한다. 두 배우는 나이와 신분을 넘어선 특별한 우정을 선보인다.

‘휴민트’는 ‘베테랑’(2015년), ‘모가디슈’(2021년), ‘베테랑2’(2024년) 등 굵직한 블록버스터를 선보인 류 감독의 신작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남북한 요원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액션 영화다. 국정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이 희생된 정보원의 단서를 쫓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휴민트는 특정 정보원이나 일반 내부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취득한 정보를 통칭하는 말이다.
류 감독의 전작 ‘베를린’(2013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시원시원한 액션물에 대한 관객의 오랜 갈증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총격전과 카체이싱 등을 앞세운 화려한 액션과 톱니바퀴 돌아가듯 척척 합이 맞아떨어지는 팀플레이는 작품에 속도감을 더한다. 류 감독과 ‘모가디슈’(2021년), ‘밀수’(2023년)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배우 조인성이 국정원 요원 조 과장 역으로 출연해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 역의 배우 박정민과 대립한다. 러시아 마피아와 국정원, 북한 총영사관, 북한 보위성이 복잡하게 얽히는 격투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매일 눈앞에 보인다면 어떨까.’ 영화 ‘넘버원’은 이 독특하고도 참신한 설정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영화 ‘거인’, ‘여교사’ 등을 연출해 온 김태용 감독의 신작으로,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하민(최우식)은 언젠가부터 엄마 은실(장혜진)이 해준 음식만 먹으면 눈앞에 정체 모를 숫자를 보게 된다.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하민이 집밥을 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일련의 과장을 담은 가족 판타지 영화다.
장혜진과 최우식이 영화 ‘기생충’ 이후 7년 만에 모자 관계로 다시 만난다. 김 감독과 최우식은 ‘거인’ 이후 12년 만의 재회다. 최우식은 불안함과 애틋함을 넘나드는 복잡한 감정을 특유의 섬세한 연기로 풀어낸다. 다사다난한 삶에서도 씩씩하게 매일을 살아가고, 어떤 순간에도 따뜻한 엄마의 얼굴을 잃지 않는 장혜진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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