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B1A4의 멤버이자 뮤지컬 배우인 산들(본명 이정환)이 '데스노트'로 연기 스펙트럼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정체가 베일에 싸인 기묘한 분위기의 천재 탐정 엘(L)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는 호평을 얻고 있다. 산들은 스스로 "성공한 덕후"라고 칭하며 "너무 즐겁게 무대에 오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데스노트'는 사신의 노트인 데스노트를 손에 넣은 후 사회의 악을 처단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천재 고교생 라이토와 그를 추적하는 명탐정 엘의 숨 막히는 두뇌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 만화부터 애니메이션, 영화, 뮤지컬까지 쭉 사랑받은 스테디셀러 IP다.
뮤지컬은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아 장장 7개월에 걸친 장기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데스노트'는 그간 홍광호, 김준수, 김성철, 강홍석, 김선영, 정선아, 박혜나 등 굵직한 배우들이 거쳐 갔다. 올해 10주년 공연에는 새 얼굴들이 대거 투입돼 '변화와 도전'의 원년으로 새 도약에 나섰다.
2012년 '형제는 용감했다'를 시작으로 10년 넘게 뮤지컬 무대에 서고 있는 산들 역시 엘 역으로 캐스팅되며 '데스노트'의 새 얼굴을 담당하고 있다.
12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산들은 '데스노트' 오디션 당시를 떠올리며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였는데, 진짜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작품이 10주년이 됐고, 이전에 했던 선배님들이 워낙 '레전드'로 불리니까 부담감이 컸다. 그래도 일단 대본과 나를 믿고 무대에 한번 서보자는 마음이었다. 같이 하는 배우들도 믿으면서 자신 있게 무대에 서니 어느새 4개월째가 됐다"며 웃었다.
'데스노트'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산들은 "학창 시절에 접하고 너무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하다고 생각했었다. 노트에 이름을 적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게 내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 꼭 하고 싶었다. 욕심이 났는데 하게 되어서 기쁘다"면서 "집 밖에 안 나가고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성공한 덕후'"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엘은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이다. 정체가 공개된 적 없는 미궁의 인물인데다, 소파에 쪼그려 앉는 독특한 자세를 추구한다.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는 그는 사회성이 없어 보이는데,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날카롭다.
산들은 캐릭터 분석 과정에 대해 "다른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냥 대본 안에 있는 엘이 궁금했다. '남들과 다르게 해야지', '나만의 무언가를 해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친구가 왜 이런 식으로 살아왔고, 어떻게 해서 명탐정이 됐는지'를 상상하며 만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머릿속에 이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엘의 모습이 구체화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엘의 모습을 살리려고 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애니메이션 엘과 같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장 기분 좋았던 반응 역시 '애니메이션 엘 같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사실 엘은 대중이 알고 있는 산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정확히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산들은 "많은 분께서 저를 밝고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로 생각하시지 않나. 그래서 엘이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걱정이 많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그 걱정을 깨보기로 했다. 그래야 앞으로 무언가를 할 때 더 많은 분이 날 믿어줄 거라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태해지는 게 싫다"며 자신을 향한 채찍질도 멈추지 않는 산들이었다. 그는 관객 반응을 계속해서 찾아본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서 후기를 찾아보는 게 하루의 '루틴'이자 '힐링'이 됐다면서 "사람들이 잘했다고 하면 의심이 먼저 든다. 최고로 잘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아직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날 계속 의심하고 채찍질해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스노트' 속 엘을 흡수하기까지 동료 배우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산들은 "욕심 나는 게 연습할 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데스노트' 유경험자분들이 '너 지금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지금처럼 하면 돼'라는 얘기를 많이 해줬다. 그게 정말 큰 힘과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렘 역할의 누나들(이영미·장은아), 야가미 소이치로 형님들(김용수·서범석·윤영석)이 많이 도와줬다. 말로써 많이 보듬어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끝으로 산들은 "'데스노트'는 처음으로 제가 많은 분께 배우로서 보여지는 작품"이라면서 "'산들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작품인 것 같아서 의미가 아주 크다. 배우로서 스펙트럼이 조금 더 넓어진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머릿속이 '데스노트'로 가득 차 있어서 엘을 떠나보내게 된다면 굉장히 공허할 것 같다"며 "제 공연을 보고 짜릿했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공연이 끝나고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오는 5월 10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산들은 오는 3월 14일 공연을 끝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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