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찾은 이집트 기자의 이집트대박물관(GEM). 공식 가이드는 박물관 창밖으로 보이는 쿠푸왕의 대(大)피라미드를 가리키며 나지막이 말했다. “저 피라미드와 클레오파트라보다 클레오파트라와 우리 사이가 더 가깝습니다.” 그 한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가 건설된 건 기원전 26세기,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1세기 사람. 그 사이엔 우리가 차마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시간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고대 국가로서의 이집트는 기원전 36세기께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유럽 끝자락에는 아직 매머드가 돌아다니던 시절이다. 그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집트는 언제나 지중해 연안과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척박하고 건조한 사막 기후는 역설적으로 억겁의 시간을 박제하고, 유물을 보존하기에 최적이었다.
아득한 옛날의 신비롭고 위대한 문화, 잘 보존된 수많은 유물, 넘쳐나는 이야기는 가슴 속 뜨거운 ‘로망’을 자극한다. 이집트에 미친 사람들을 뜻하는 ‘이집토마니아’가 생겨나는 이유다. 대표적 인물이 프랑스 출신 고고학자이자 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설립자 겸 초대 관장인 오귀스트 마리에트(1821~1881). 이집트 유물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평생을 바친 그는 자신의 시신이 프랑스 대신 이집트박물관 정원 석관에 안치되기를 택했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지독한 열정이었을까.
지중해를 통해 이집트와 접하는 유럽에 비하면 동양권 국가에서 이집트란 먼 나라 전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서서히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이집트 유물관광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집트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개관한 GEM이 불을 댕겼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연일 GEM 관련 정보가 나오고, GEM 방문을 핵심 콘텐츠로 한 여행 상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아르떼가 피라미드와 GEM 등의 박물관이 있는 기자·카이로를 찾았다. 왜 세계인이 이집트 문명과 GEM에 경탄하는지, 무엇이 특별하고 어떤 점을 눈여겨보면 좋을지를 정리해 소개한다. 수천 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이집트의 박물관 속으로 떠나보자.
축구장 70개 크기…이집트대박물관 속성 가이드
지난해 11월 이집트 기자에 문을 연 이집트대박물관(GEM)의 연면적은 49만㎡에 달한다. 축구장 70개와 맞먹고 바티칸시국(약 44만㎡)보다 큰 세계 최대 규모다. 소장 유물은 10만 점 이상. “유물 하나하나를 다 찬찬히 보려면 24시간 잠을 안 자고 봐도 70일이 걸린다”(미국 CBS)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지난 2일 찾은 GEM 곳곳에서는 넋을 잃고 벤치에 주저앉은 관람객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방대한 유물의 숲에서 길을 잃은 이들이다. 하지만 핵심만 짚으면 3~4시간 안에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다는 게 GEM 공식 가이드들의 설명이다. 현지 가이드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박물관의 핵심만 축약해 소개한다.

가장 먼저 입장권부터 챙겨야 한다.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예매하면 되고, 현장에서는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 외국인 관람객 입장료는 4만원 선으로 다소 비싸지만 학생증이 있는 학생이나 어린이는 반값이다. 영어가 가능하다면 6만원 상당의 공식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도 좋다. 시간을 미리 지정해 예약해야 한다.
박물관 입구의 대형 오벨리스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거대한 람세스 2세 상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그는 66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며 신적인 권위를 누린 명군이다. 높이 11m, 무게 83t에 달하는 이 거대한 석상은 크기가 너무 커 먼저 자리를 잡은 뒤 건물을 주변에 올리는 방식으로 설치됐다. 다음으로 관객을 맞는 것은 GEM의 명물인 계단 전시장 ‘그랜드 스테어케이스’. 이집트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내세의 영원한 삶과 연결되는 통로였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계단 곳곳에 유물을 배치한 파격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며 편안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이곳 전시는 총 네 개의 주제로 나뉜다. 가장 낮은 곳에는 파라오 조각상들이 있다. 위로 올라가면 신전의 기둥과 문, 오벨리스크가 나타난다. 그 위로는 태양신 ‘라’를 비롯한 신화 속 신들의 조각상이, 마지막엔 화려한 석관들이 자리한다. 그 끝에서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쿠푸왕의 대(大)피라미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의 권력에서 시작해 신전을 지나 신들을 만나고, 마침내 영원의 상징인 피라미드를 마주하는 흐름이다. 이렇게 관람객들은 계단을 오르며 수천 년 전 파라오들이 꿈꾸던 ‘영생으로의 여정’을 단숨에 압축 체험한다.

‘피라미드 뷰’ 유리창을 지나면 상설전시관 초입에서 이집트 문명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배우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500년 전인 기원전 8500년, 북아프리카는 지금과 같은 사막이 아닌 초원이었다. 그 덕에 사람들은 초원 곳곳에 흩어져 유목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5300년께 기후변화로 인해 북아프리카 지역이 다시 사막화됐고, 사람들은 오아시스와 나일강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도시와 사회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전시관은 4개 시대별로 각 3개씩, 총 12개의 주요 전시실로 구성된다. 고왕국(기원전 2686~2181년), 중왕국(기원전 2055~1650년), 신왕국(기원전 1550~1069년), 후기 왕조 및 그리스·로마 시대(기원전 664년~서기 395년) 순이다.
각 시대를 풀어내는 키워드는 세 가지. 사회, 왕권, 종교다. 이집트 역사가 다소 낯선 관람객이라면 ‘사회’ 파트가 가장 흥미로울 가능성이 높다. 고대인들이 먹고, 자고, 일하던 일상을 다뤄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쓰던 가발과 화장품, 장신구 등이 가장 인기 있는 전시품이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돌에 그린 동물 그림, 친구를 놀리는 낙서 등도 재미있다. 물론 거대한 파라오 석상을 만날 수 있는 ‘왕권’, 개의 얼굴을 한 죽음의 신 아누비스 석상 등이 있는 ‘신화’ 전시실도 국보급 유물로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최초로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 5400여 점 전체를 공개한다. 110㎏의 황금 관을 비롯해 의자, 장신구, 마차 등 전시장 곳곳이 금색으로 빛난다. 찬란한 보물들 사이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이집트의 얼굴’로 불리는 황금 마스크다. 정면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긴 줄을 서야 하지만, 수많은 관람객이 그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한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유물들에서도 소년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전시실에 있는 작은 관 두 개는 투탕카멘의 사산된 두 아이를 담고 있던 것이다. 자신을 아끼던 할머니의 머리카락, 좋아하는 보드게임 ‘세네트’ 판 등도 있다. 사후세계의 여정에 대비해 챙긴 ‘접히는 캠핑의자’와 좋아하는 음식들은 죽음을 앞둔 투탕카멘의 불안과 슬픔을 짐작게 한다.
GEM 본건물 옆에 있는 별도 전시관 ‘쿠푸의 배 박물관’도 놓쳐서는 안 된다. 쿠푸의 대피라미드 남쪽에서 1954년 발굴된 ‘태양의 배’는 길이 44m에 이르는 목조 선박이다. 쿠푸왕의 장례식 때 시신을 옮기는 데 사용됐다는 설, 태양신 라와 함께 사후세계로 갈 때 타는 배라는 설 등이 있다. 관람객들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배를 사방에서 둘러보며 압도적인 위용을 감상할 수 있다.
기자·카이로=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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