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발을 대개 갑작스럽게 한다.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다. 병원 미용실 예약을 시도한다. 단골 헤어 디자이너 P를 찾는다. 하지만 미용실은 당일 예약이 어려울 때가 잦다. 운 좋게 예약이 되면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발소에 예약을 한다. 그렇게 두 곳을 번갈아 다닌다.이발소에서는 늘 ‘바리캉’으로 시작한다. 옆머리와 뒷목선 아래처럼 짧고 평평하고 경계가 분명한 곳부터 정리된다. 대부분 작업은 바리캉으로 진행되고, 가위는 앞머리나 뒷머리 윗부분을 다듬는 데만 쓰인다. 전체적으로 빠르고 깔끔하다.
미용실은 순서가 이발소와 다르다. 가위로 전체 윤곽을 먼저 잡고, 앞머리를 자르고 정수리를 다듬는다. 그다음 바리캉으로 옆머리와 뒷머리 하단을 정리한다. 다시 가위로 경계를 잇고, 뒷목과 옆머리 선을 세심하게 다듬는다.
이발 중간에 헤어 디자이너 P가 물었다. “어디서 깎으셨어요?” 그는 뒷머리를 보면 자기가 한 건지 바로 안다고 했다. “오늘 깔끔한 것도 좋지만, 다음에 왔을 때 지저분하지 않은 게 더 중요해요.” 그는 커트에도 ‘점·선·면’이 있다고 했다. 점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선은 윤곽과 경계, 면은 전체의 볼륨과 형태다. 여자 커트는 면이 중요하지만, 남자 커트에서는 선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뒷머리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단정해 보이도록 뒷목선 마무리에 정성을 들인다고 덧붙였다.
그날, 가위가 뒷머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진료에도 점과 선 그리고 면이 있다는 것을. 점은 혈액검사 수치와 영상 검사에서 확인되는 암의 크기다. 아주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우리는 매번 숫자를 들여다본다. 때로는 그 숫자들이 전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단지 수치만으로 환자 상태를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점을 이어 선을 그린다. 점들의 변화 방향을 읽기 위해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수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암의 크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본다. 이전 검사와 이번 검사의 변화와 기울기, 그 흐름. 그것이 우리가 보는 선이다.
그러나 진료실에서는 점과 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암은 줄어들었지만,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환자가 있다. 반대로 혈액 수치는 좋지 않지만 밝은 표정으로 들어와 농담을 건네는 환자도 있다. 숫자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그것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수치와 영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삶의 결, 말투와 표정, 하루를 버티는 방식까지 그 모두를 아우른 상태가 ‘면’이다.
미용실에서는 선이 중요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는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이 아니라 지금 이 사람을 이루고 있는 면이다. 나는 오늘도 진료실 한가운데서 점을 모으고, 선을 잇고,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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