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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못 박힌 자국이 있는 손

입력 2026-02-12 17:25   수정 2026-02-13 00:06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여태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비극은 그 역사가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그중 하나가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 ‘홀로도모르(Holodomor)’다. 약 350만 명이 죽었는데, 450만 명 이상까지도 추정된다. ‘유럽 최대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대재앙이 벌어진 건 스탈린의 농장 집단화 강제 때문이었다.

소련 전역에서 반발이 있었고, 특히 개인 농장의 전통이 깊은 우크라이나와 돈강 유역에서 심했다. 급속한 공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농산물 수출에서 얻으려던 스탈린은, 농산물 생산이 기대에 못 미치자 종자용 곡물까지 탈탈 털어갔다. 울부짖으며 저항하던 농부들은 집단농장에 소들을 바치느니 도축해버렸다. 이런 식의 수탈과 자해적 피해가 누적되면서 대기근이 도래했던 것이다.

소련은 ‘진실’이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돈강 유역, 우크라이나, 북캅카스, 쿠반 등지를 봉쇄하는 한편 농장 집단화를 반대했거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관리들을 숙청했다. 정치적으로 기획된 집단살해(genocide)라는 주장이 인정받는 건 그 때문이며, 이는 1941년 독소전쟁 초기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 독일군을 해방자로 맞아들인 원인이 되었다. 영화 ‘미스터 존스’(2019)는 바로 이 홀로도모르에 대한 실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가레스 존스(1905~1935)는 영국 총리의 외교 고문을 지낸 촉망받는 청년 기자로서 독일 수상이 된 직후의 히틀러를 인터뷰한 특종 경력이 있다. 그는 유토피아 건설을 선전하는 스탈린 정권의 막대한 자금 출처에 의문을 품고 모스크바로 향한다. 거기서 가레스는 스탈린에게 ‘총체적으로’ 매수된 채 향락을 누리고 있는,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이자 스탈린 체제를 찬양하는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은 월터 두란티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가레스마저 자신과 비슷한 인간(기자)으로 만들려 하지만 가레스는 도청과 미행, 납치의 위협을 뚫고 우크라이나 잠입에 성공한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섭리(시장경제)를 거슬러 설계한 지옥에서, 굶주린 인간이 인육(人肉)을 먹는 것까지 보게 된다. “스탈린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도, 위대한 실험장도 아닙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영국으로 돌아온 가레스는 진실을 알리려 한다. 신문사들에 문전박대당하던 끝에 1933년 3월 29일 기자회견을 연 뒤 ‘맨체스터 가디언’ ‘이브닝 스탠더드’ 등에 기사를 싣는다. 이 일에 영감받아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3월 31일 월터 두란티는 ‘뉴욕타임스’에 반박 기사를 실어서 가레스의 신뢰성을 매장시킨다. 당시 서구의 레거시 미디어들은 소련과의 외교 관계와 스탈린의 경제적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가레스 존스의 폭로를 냉대했다.

거대 언론사의 권위에 업힌 두란티의 세련된 거짓말로 인해 진실을 말한 가레스는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 스탈린이 아무리 정보를 차단하고 공작을 했다 한들, 스탈린의 정체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가레스 존스뿐이었을 리가 없다. 유대인 수용소도 그랬고, 지금 북한의 강제수용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진실보다 자신이 속하고 싶은 ‘집단의 분위기’를 우선한다. 안락과 이득을 위해 진실을 ‘선택’하거나 기각한다. 몰랐을 리가 있나 모른 척한 거지.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다. 진실에 대한 무성의함이다. 팩트를 저버리게 만드는 모든 장벽과 안개다.

1935년 8월 가레스 존스는 내몽골에서 취재 중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살해된다. 반면 두란티는 73세까지 호의호식 천수를 누렸고, 그의 퓰리처상은 박탈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두란티들은 갈라치기와 위선을 제공하며 대중의 도파민을 관리한다. 대중은 진실을 귀찮아한다. 진실보다는, 내 외로움과 무의미함을 잊게 해주는 ‘증오(hate)’가 더 중요하다. 제 입맛에 맞는 가짜 진실과 왜곡된 정의감을 쇼핑한다. 이 시대에도 가레스 존스들은 순교당하고 있다. 예수가 못 박힌 자국이 있는 손을 만지게 해줘도 당신은 그 손을 밀쳐둔다. 원하는 내용의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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