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현지시간)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우루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EU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우리 목표는 27개 모두의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유럽의 경쟁력이나 행동 역량이 약화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강화된 협력 관련한 조약에서 적용된 규정을 활용하는 것을 주저해선 안된다"고 썼다. 이같은 의견은 최근 EU에서 경제 규모가 큰 6개국이 이른바 'E6'를 따로 만든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정된다. 유로뉴스는 "지난 13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포함된 비공식 정상회의에서도 관련 내용이 논의됐다"며 "EU집행위 위원장의 직책이 유럽연합 전체의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조치"라고 분석했다.
'E6'에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폴란드가 참여한다. EU 27개 회원국 중 경제 규모가 큰 순서로 6개국이다.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EU 전체의 70%를 넘는다. 독일 재무부에 따르면 6개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28일 화상회의를 열어 스타트업 자금 조달과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 확대, 효율적 방위비 지출, 원자재 등 안정적 공급망 확보 등을 논의했다.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재무장관은 E6에 대해 "중요한 요소는 (유럽) 경쟁력과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우리(E6)가 추진력을 제공하고, 다른 국가들의 참여도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EU전문매체 유랙티브는 "차기 E6 회의가 오는 3월 9일~10일까지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재무장관 회의를 계기로 개최될 예정"이라며 "국방과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이 기정사실화 된 E6가 결성된 것은 국제사회에서 EU의 '경쟁력 약화'가 주된 원인이란 분석이다. EU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최근에는 중국과 공급망 갈등이 심화됐다. 하지만 회원국이 27개에 달해 정책 결정에서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과정에서는 헝가리 등 일부 동유럽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해 대러시아 제재가 지연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등 자국 우선주의 정책은 독일·프랑스가 E6에 적극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달 EU의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와 관련해 은 "그들(EU)의 의사 결정 속도는 가장 빠른 편이 아니다"라며, 유럽이 러시아산 연료 구매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그들(EU)은 '무서운 유럽 실무 그룹'을 우선 구성할 것 같다. 그게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고 말했다. EU의 복잡한 의사 결정 구조로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라는 조롱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실용주의'에 치우쳐 유럽이 G6 중심 ‘핵심국’과 주변부로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내부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EU를 선도하는 주요 회원국들은 더 쉽게 특정 계획(이니셔티브)을 추진할 수 있겠지만 블록 내 소규모 국가들과 동유럽 신규 회원국들은 이 과정에서 소외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아일랜드 등 일부 국가는 "국가 규모만이 가입 기준이 되는 구조보다, 공통된 견해를 가진 사안에 대해 국가들이 함께 모이는 구조를 훨씬 더 선호한다"며 E6에 우려를 표시했다.

최근 들어 EU는 이해 관계에 따라 국가별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점점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달 초 EU는 우크라이나에 900억 유로 (약 155조원) 규모를 대출해주기로 합의했는데, 친러성향의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는 대출 국가 명단에서 제외됐다.
최근 불가리아가 유로존의 2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해 유로화를 공식통화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EU 27개국 중에서 체코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덴마크 등 6개국가가 자국 통화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유로존 가입에 필수 요건인 ERM(유럽 환율 메커니즘) II에 가입하지 않은 탓이다. ERM II는 유로화와 다른 EU국 통화 간 환율 변동이 시장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제도다. 유럽중앙은행은 비유로존 국가의 유로화 도입 선결 조건 중 하나로 ‘ERM II 가입 및 특정 기간 이상의 안정적 환율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EU 전반을 규율하는 헌법적 문서인 '리스본조약'은 20조에서 일부 EU국가 만의 정책 추진이 가능한 길도 열어놓은 상태다. 이는 EU가 27개국 합의(특히 만장일치 등)가 막혔을 때, 최소 9개 회원국이 EU 제도·절차를 그대로 활용해 특정 정책을 먼저 추진할 수 있게 한 장치다. 유로뉴스는 "유럽은 이미 이중 속도의 사회를 맞이했다"며 "EU 내 각종 임시 조직들이 EU 본부의 감독을 벗어나 내부 조정을 복잡하게 하고,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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