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해 말 페이스북에 “연말 휴가 기간은 책을 읽을 최적의 시간”이라는 글과 함께 지난해 독파한 9권의 주요 서적을 공개했다. 최근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공학도의 국가 중국’을 비교한 <브레이크넥>을 비롯한 국제정치·경제 관련 전문서들이 그의 독서목록에 이름을 올렸다.세계적인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달러 이후의 질서>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삶을 그린 <생각하는 기계>, 미국 진보 정치가 놓친 ‘풍요’라는 정책 선정 문제를 다룬 <어번던스> 등 그의 독서 리스트는 호화롭다. 더불어 양서를 고르는 그의 남다른 ‘감식안’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국제정치와 글로벌 교역의 ‘길목’인 싱가포르를 이끄는 그가 <초크포인트> <테크놀로지와 강대국의 부상> 같은 전문 서적을 탐독하는 모습에서 현안에 얽힌 고민을 넓은 시야에서, 정제된 언어로 전하는 리더의 품격도 엿보게 된다.
웡 총리뿐 아니라 글로벌 각국의 정치·경제 지도자 중에는 ‘독서광’이 적지 않다. ‘모든 지도자는 독서하는 사람(all leaders are readers)’이라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워런 버핏 전 벅셔해서웨이 CEO 등이 수불석권(手不釋卷)하는 리더로 알려져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온라인 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하루 1~2시간은 꼭 책을 읽는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퇴임 후 꿈이 ‘작가’라고 밝혔다.
이처럼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 수많은 다른 이의 삶을 책임진 인물이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수시로 책장을 넘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큰 기업과 국가를 이끄는 이들에게는 일반에게 공개된 서적에서 볼 수 없는 중요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보 획득 측면만 보면 이제 책은 효율적인 도구라고 말하기 힘들다. 심지어 책의 ‘전성시대’에도 책이 전하는 정보는 쓸모에 한계가 있었다. ‘용을 잡는 기술’(屠龍之技)로 표현된 <장자(莊子)> 속 문구처럼 책에 담긴 내용 대부분은 배우기는 어려워도 현실에선 쓸 곳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행하던 지식의 저장소 역할도 인공지능(AI)에 빠르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2024년 생성형 AI 챗봇 서비스 업체 앤스로픽이 중고 도서 수백만 권을 구입해 절단기로 책을 분리한 뒤 이를 스캔해 AI 학습에 활용한 것은 ‘정보의 요람’으로서 책이 물리적 ‘장례식’을 치른 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나 ‘킬링 타임’용으로는 책보다 경쟁력 있는 수단이 널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책만이 전할 수 있고, 책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책만의 강점이 있다. AI가 요약하고, 꾸며주는 정보는 화려하고 편리하긴 해도 정작 ‘내 것’으로 만들기엔 휘발성이 너무 강하다. 쉽게 얻은 데이터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무의미한 글 뭉치일 뿐이다. 자칫 AI가 내뱉는 현란한 ‘거짓말’을 판별할 판단력마저 잃지 않을지 겁도 난다. 무엇보다 지루하게 밑줄 그어가며 책장을 넘기는 과정을 건너뛰어선 복합적인 사고와 통찰력을 얻기란 쉽지 않다. 넓고, 길고, 깊게 보는 데 아직은 책만 한 것이 없다.
이런 책의 진가를 느끼려면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한번 독서의 리듬이 끊어지면 책은 순식간에 부담스러운 존재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설 연휴를 책과 친해지는 계기로 삼아보면 어떨까.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