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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독일 메모리 반도체 제왕 '키몬다'는 왜 추락했나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2-13 08:00   수정 2026-02-13 08:05


2000년대 중반 글로벌 메모리 '빅3'였던 삼성전자·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와 독일 키몬다(Qimonda)의 운명은 2008년 극명하게 갈렸다.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반도체 사이클'에서 당시는 역대 가장 힘겨운 다운 사이클 국면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불황기에 공정 전환과 원가 혁신, 대규모 투자로 버텼지만 유럽의 자존심이던 키몬다는 자본력과 국가 전략의 부재 속에 기술 상용화에 실패하며 파산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초호황을 누리는 지금의 한국 반도체 업계가 키몬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다음 불황을 기준으로 투자·연구개발(R&D)·정책 체력을 지금부터 축적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유럽의 D램 챔피언, 왜 3년 만에 무너졌나
1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독일 반도체 산업의 상징이었던 키몬다는 유럽 내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플레이어였다. 키몬다는 2006년 독일 인피니온의 메모리사업부가 분사해 설립된 D램 전문 기업으로, 출범 당시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3위까지 오르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독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300mm(12인치) 웨이퍼 기반 첨단 팹을 갖추고 전력 효율을 높이는 독자 공정 기술까지 확보하면서 "유럽에도 메모리 반도체 챔피언이 탄생했다", "자동차 초강국이 반도체 석권을 앞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독일의 메모리 제왕은 불과 창업 3년 만인 2009년 파산했다. 배경에는 반도체 다운 사이클이라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이후 전 세계 D램 산업은 대규모 증설 경쟁에 들어간 상황에서 PC·서버 시장 성장 둔화와 맞물리면서 심각한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터지며 정보기술(IT)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D램 가격은 제조 원가 아래로 추락한 데다 메모리 업체들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했다. 당시 D램 가격은 치킨게임 경쟁 속에서 2007년 대비 85% 급락했다. 특히 512Mb급 제품은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메모리 반도체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라는 사실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시기였다. 키몬다는 심각한 재무 압박을 받기 시작해 2007년 3분기부터 2008년 4분기 누적 적자가 25억 유로까지 불어났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기술·정책 대응력의 삼각 불균형이었다. 가격 붕괴 국면에서 치열한 출혈 경쟁이 벌어지자 키몬다는 당시로서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었던 '베리드 워드라인(Buried Wordline)'에 기반한 차세대 D램을 앞세워 경쟁력을 회복하려 했다. 베리드 워드라인은 타 회사와 달리 칩 내부의 전기선을 실리콘 내부에 묻은 다음 더 짧고 빠르게 만들어 메모리 속도를 높이고 전기를 덜 쓰게 하려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돌입하기 전이었던 탓에 키몬다는 원가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 투자 여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회사는 2008년 대만과 합작으로 세운 D램 업체 이노테라(Inotera) 지분 35.6%를 마이크론에 매각해 현금을 일부 확보했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사이 재무 상황은 급격히 악화돼 2008년 회계연도 매출은 약 17억8500만 유로로 전년 36억800만 유로 대비 51% 감소했다. 회사는 유동성 압박과 투자 부족이 겹쳐 생산 설비와 연구개발(R&D) 조직을 축소했다. 경영진은 3000여 명의 인력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를 단행했으나 상황 반전에는 실패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D램 보릿고개서 생존한 이유
반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막대한 현금흐름과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버티거나 감산과 구조조정을 통해 시간을 벌었다. 키몬다가 몰락하는 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사이클의 극심한 가격 붕괴 속에서 살아남으며 산업 생존력을 증명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512Mb DDR2 D램 가격이 2007년 최고점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기가비트 D램 가격도 급락하며 산업 전반이 적자구조로 들어갔다. 극한의 'D램 치킨게임' 속에서도 글로벌 메모리 빅3 중 유일하게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현 DS 부문) 부문은 2008년 3분기 24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4600억원, 3억3800만 달러(약 5000억원)의 적자를 봤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다운 사이클 속 삼성전자의 흑자 비결로 기술 선점 투자와 제조 원가 경쟁력 강화를 꼽는다. 불황일 때 더 투자한다는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승부수가 빛을 발한 것이다. 2008년 극심한 D램 가격 하락 국면에서도 이 전 회장은 도리어 첨단 D램 공정 전환에 더 속도를 높이며 40나노미터(nm)급 D램으로 조기 전환해 원가 개선에 성공했다. 이는 다운 사이클 기간에 경쟁사 대비 원가를 낮춰 가격 하락 압박을 흡수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또 제품 다각화와 신수요 대응도 위기를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 당시 스마트폰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삼성전자는 PC용 메모리에 더해 모바일 메모리 공급을 확대하면서 포트폴리오 균형을 맞추는 등 매출 다변화를 꾀하면서 'D램 보릿고개'를 이겨냈다.

하이닉스는 재무적 여력이 삼성전자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으로 버텼다. 고정비 절감·공정 효율화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공통적으로 대량 생산을 통한 단위당 고정비 분산으로 가격 하락 압박을 흡수했다"며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해 공급을 유지하면서도 원가·효율 중심의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대응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감산에 그치지 않았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오히려 다운 사이클 국면에서도 미래 기술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공정 전환을 멈추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점이 바로 키몬다와의 극명한 차이점"이라며 "키몬다는 금융위기 직전 충분한 금액의 전략적 R&D 투자를 지속할 자본력이 부재했고, 결과적으로 기술·제품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다음 다운 사이클 대비 위해 R&D로 '기술 체력' 비축해야"
키몬다의 몰락은 한 기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 부재가 드러난 사례로도 회자된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 정부 시절 독일 연방정부는 키몬다가 위치했던 작센주 정부와 금융 지원을 논의했지만 지지부진했다. 전면적인 메모리 산업 전략이나 국가적 구조조정·통합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했다. 2008년 말 작센주 정부, 인피니온, 포르투갈 금융기관 등이 3억2500만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패키지를 마련했으나 키몬다는 3억 유로가 더 필요했다. 키몬다 임원진과 독일의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나서 독일 정부에 반도체 육성을 호소했지만 작센주 정부는 추가 지원을 거부했고 독일 중앙정부도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면서 필요한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키몬다는 2009년 1월 독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유럽의 유일한 대형 D램 업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독일 연방정부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핵심 전략 산업로 설정하기보다 금융위기 확대를 우려해 재정 건전성 중심의 접근을 선택했다. 그 사이 한국과 미국, 대만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와 기술 로드맵을 유지하며 다음 사이클을 준비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에 대한 독일 정부의 이해도가 부족했다"며 "국가 원수와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 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키몬다의 몰락은 기술이 없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이클 하강기에 버틸 자본력과 국가 차원의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독일 현지의 자체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HBM 초호황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며 "다음에 다가올 다운 사이클에 대비하기 위해 R&D 투자를 통한 '기술 체력'을 비축하고, 국가 로드맵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아우르는 10년 단위의 R&D 플랜을 명확히 세워야 하는 것은 물론 HBM, 차세대 메모리, AI·전력반도체, 첨단 패키징과 같은 미래 기술에 대한 장기·대규모 투자가 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키몬다는 유럽 반도체의 자존심이었지만 반도체 사이클과 자본 파워, 국가 정책 부재라는 삼중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며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호황이 아니라 다가올 불황을 기준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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