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흐름을 보면 답은 IP에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단순히 제작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보다, 기획 단계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자본 중심의 협업에서 IP와 창작 기여 중심의 협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북미지역 진출 및 공동제작 활성화 지원방안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짚는다. 과거 북미 진출이 판권 판매나 부분적 투자 참여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한국의 원작 IP와 창작자가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이를 '글로벌 3.0' 단계로 규정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북미 기획에 한국 창작진이 결합한 '더 홀', 국내 스튜디오가 현지 제작 시스템을 기반으로 참여한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 창작자가 중심이 된 글로벌 독립영화 '어브로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IP를 매개로 한 '인턴' 리메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단순한 출자 비율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획 단계의 개입, 원작 IP의 소유 구조, 핵심 창작자의 역할 등이 협상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북미 파트너들이 가장 중시하는 요소 역시 IP의 확장성이다. 한 편의 완성도보다 시리즈화와 리메이크, 스핀오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다. 콘텐츠를 단발성 상품이 아닌 장기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다.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면서, IP를 둘러싼 협상력은 산업의 실질적 힘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제도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국제공동제작 인정 기준은 '국적별 20% 이상 출자'를 핵심 요건으로 삼는다. 자본 비율 중심의 구조다. 이 기준으로는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글로벌 영어 영화나, 100% 북미 자본이 투입됐지만 한국 창작 역량이 핵심인 프로젝트를 온전히 평가하기 어렵다.
연구는 자본 비율 대신 IP의 국적, 핵심 창작자의 참여도, 제작 지분 등 실질적 기여도를 반영하는 유연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글로벌 협업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한국 영화'의 정의를 자본 국적에만 묶어두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위험 요소도 있다. 글로벌 OTT의 투자 확대는 제작 환경을 개선했지만, IP 소유권이 플랫폼에 귀속되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장기적으로 산업의 자산 축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대신, 흥행 이후의 추가 수익을 공유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도 부담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 않는다. 한국 영화는 프로덕션과 기획 역량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네트워크와 행정, 정책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힘은 충분하지만 이를 글로벌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체계는 아직 미흡하다는 진단이다.
결국 과제는 구조 개선으로 귀결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 지원 체계의 정비, 북미 특화 거점 마련, 법률·회계 자문 네트워크 강화, 로케이션 인센티브 확대 등 산업 인프라 전반의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 IP를 확보하고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북미 진출은 외형적 확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는 분명 전환점을 맞았으나, 산업 전반은 침체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관심과 국내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컸다. 결국 기회를 실질적 도약으로 연결하는 힘은 사전에 축적된 역량에서 나온다. IP를 확보하고 협상 구조를 설계한 쪽만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미 시장에서의 성패는 더 이상 한 편의 흥행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IP를 중심으로 한 협상력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 혁신이 K-무비의 다음을 좌우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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