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 먹는 하마, 인공지능(AI)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제조업의 마진율 상식을 파괴했다.”
제조업, 특히 중후장대 산업에서 영업이익률 10%는 ‘마의 벽’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통념을 비웃듯 무려 27.6%라는 경이로운 이익률을 찍은 기업이 있다. 바로 HD현대일렉트릭이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붐과 북미 전력망 노후화라는 거대한 두 파도가 만나면서, 이 회사는 단순한 기계 제조업체를 넘어 에너지 대전환 시대의 슈퍼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깜짝 실적 이유는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2월 6일 전년도 4분기 실적을 내놓았다. 이번 실적 발표는 이 회사가 왜 지금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매출 1조1632억 원, 영업이익 3209억 원.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2.6%, 영업이익은 무려 93.0%나 폭증했다.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가볍게 넘어선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단연 27.6%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이다. 이는 통상적인 전력기기 업체의 이익률을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비결은 ‘북미 시장’에 있었다. 4분기 북미 지역 매출이 5545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5%나 급증했다. 미국 애틀랜타 법인에 쌓여 있던 재고 물량이 고객사로 대거 인도되면서 고마진 매출이 일시에 반영된 결과다. 환율 효과도 있었지만, 실적 자체의 폭발적 성장은 시장에 충격을 줬다.
북미 매출 비중은 급격히 늘었다. 2024년 4분기 22.3%였던 북미 매출 비중이 1년 만에 47.7%까지 높아졌다. 올해 전체 예상 비중은 45% 정도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판 것이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 위주로 선별 수주한 물량이 매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며 “공급자 우위 시장의 힘이 숫자로 증명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전이 중요한 시대
실제로 HD현대일렉트릭은 저가 수주 경쟁을 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가격을 올려도 좋으니 물건만 제때 달라”는 글로벌 빅테크와 전력청의 러브콜을 골라 받고 있다. 시장의 눈은 이제 ‘변압기’를 넘어 ‘배전기기’로 향하고 있다. 전기를 고압으로 보내는 것이 변압기라면, 이를 받아 데이터센터나 공장 구석구석으로 뿌려주는 것이 배전기기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이 배전 시장을 ‘제2의 성장 엔진’으로 점찍었다. 회사는 최근 충북 청주에 스마트팩토리 기반의 배전기기 전용 신공장을 완공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단순 증설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북미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끊김 없는 전력 공급이 생명이다. 따라서 초고압 변압기부터 배전반, 중저압 차단기까지 전력 시스템을 ‘패키지’로 공급받기를 원한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북미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점유율 1위를 바탕으로 배전기기까지 묶어 파는 ‘패키지 수주’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중저압 차단기의 UL인증 획득으로 진입 장벽이 높았던 북미 배전 시장의 문이 열렸다”고 분석했다.
이번 신공장은 올해부터 실적에 본격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 변압기에 편중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이익 체력을 한 단계 레벨업시킬 것으로 증권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수주 감소 우려는 착시
지난해 4분기 신규 수주는 7억3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수주 감소가 아니냐는 의심이 따랐다. 하지만 이는 ‘착시’에 가깝다. 이미 3~4년 치 일감을 확보했기에 무리해서 주문을 받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 잔고는 67억3100만 달러(약 9조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21.5% 늘어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잔고의 질이다. 수익성이 높은 북미와 유럽, 중동 지역의 물량이 대다수다. 특히 미국 내 765킬로볼트(kV) 초고압 송전망 신설 프로젝트 등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수주가 늘어나고 있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금의 수주 감소는 생산 슬롯이 꽉 차서 발생하는 ‘행복한 비명’”이라며 “고객사들이 2027~2028년 납기 물량까지 미리 계약하려고 줄을 서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올해 수주 목표로 42억2200만 달러를 제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HD현대일렉트릭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전력기기 산업은 ‘전기화’의 핵심 인프라다. 탄소중립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늘어날수록, 이를 전력망에 연결할 변압기와 차단기 수요는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회사는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육불화황 가스를 쓰지 않는 ‘친환경 개폐기’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유럽 등 환경 규제가 까다로운 선진국 시장에서 이 기술력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해상풍력 단지용 특수 변압기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며 ‘그린 에너지’ 밸류체인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주가 전망은
주가는 최근 1개월 사이 15% 이상 급등하며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증권가는 목표주가를 줄줄이 상향하고 있다. 삼성증권과 키움증권은 목표주가를 100만~110만 원대로 높여 잡았다. 가장 목표주가를 높게 제시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123만 원)이다. 6개월 전 58만 원대였던 목표주가 평균이 108만 원을 돌파했다.
북미 전력망 교체 주기가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는 점과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 등이 근거다. 성종화 LS증권 연구원은 “2026년 매출은 전년보다 17% 성장한 4조7748억 원, 영업이익은 29% 늘어난 1조2793억 원을 기록할 것”이라며 “글로벌 경쟁사 대비 여전히 밸류에이션 매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HD현대일렉트릭의 2월 중순 현재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34배 수준이다. 6개월 전(22배) 대비 급격히 높아졌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사인 GE베르노바(약 35배), 지멘스에너지(42배), 이튼(28배) 등과 비교했을 때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리스크도 있다. 원자재(구리·전기강판) 가격 변동과 환율 하락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미 확보된 수주 잔고에는 물가 연동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원가 상승분을 판가에 전가할 수 있는 구조다.
고윤상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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