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스로픽은 12일(현지시간) 시리즈G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업 가치는 3800억달러로 평가됐다. 최근 출시된 앤스로픽의 AI 에이전트 ‘클로드 코워크’의 위력을 본 투자자 수요가 몰리며 5개월 만에 가치가 두 배로 올랐다. 오픈AI(5000억달러) 턱밑까지 추격했고 세일즈포스(1765억달러), 어도비(1098억달러) 등 주요 SaaS 상장사 시가총액을 가뿐히 넘어섰다. 앤스로픽은 “클로드는 사업 운영에서 점점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자금 조달은 이와 같은 엄청난 수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300억달러는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대형 공모에 해당하는 규모”라며 “주요 투자자가 AI 기업 투자를 차세대 산업 인프라를 선점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현상을 딜메이커들에 찾아온 ‘적자생존의 순간(Darwinian moment)’이라고 표현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해 구독료에서 발생하는 현금을 얻는 것에서 AI 플랫폼을 잡아 미래 이익을 먼저 확보하는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리콘밸리 한 대형 VC 파트너는 “오픈AI와 앤스로픽 같은 프런티어랩은 이제 전통적인 스타트업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빅테크에 더 가까운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이날 뉴욕증시에서는 소프트웨어주가 다시 한번 ‘AI 대체 공포’에 휩싸이며 일제히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지수는 2.03% 떨어졌고 다우존스부동산서비스지수(-11.44%), 다우존스컴퓨터서비스지수(-5.17%) 등도 급락했다.
SW산업서 AI로 '머니 무브'…빅테크 독점력 더 강해지나
앤스로픽 사례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무게중심이 상장사 중심인 주식시장에서 비상장 AI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금 이동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AI 투자로 유입된 비(非)VC 자금은 1217억달러로 전년(402억달러)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오픈AI, 앤스로픽, xAI, 데이터브릭스, 스케일AI 등 5개 기업이 전체 스타트업 펀딩의 46%를 차지하는 이른바 ‘메가 라운드’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글로벌 자본시장 유동성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의 초대형 VC가 주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5억달러 이상의 초대형 투자가 지난해 전체 VC 투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며 “이런 투자는 명목상 벤처투자지만 전통적인 초기 벤처투자의 위험·수익 프로필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번 앤스로픽 투자에 참여한 세쿼이아캐피털의 행보는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픈AI 초기 투자사로 알려진 세쿼이아가 오픈AI의 경쟁사인 앤스로픽에 투자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온 ‘경쟁사 동시 투자 금기’ 관행을 깬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구조적 리밸런싱을 예고한다. AI 프런티어랩으로 초대형 자금이 빨려 들어가면 결국 기존 상장 주식시장에 배분되는 자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종은 “AI가 기존 사업 모델을 잠식한다”는 공포까지 겹치며 투자 매력이 급격히 약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딜메이커들에 찾아온 적자생존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모투자 시장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수합병(M&A)과 레버리지 바이아웃(LBO)을 통해 소프트웨어 기업을 사들이던 사모펀드의 투자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 프런티어랩이 인프라의 핵심 계층을 장악할수록 AI 모델·데이터센터·반도체·클라우드가 결합된 빅테크 생태계의 독점력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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