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병오년에 우리 대박 난대!” “오늘부터 ‘운빨’ 시작이다!”지난주 동갑내기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온 덕담이다. 설도 멀었는데 오늘부터? 이날은 2월 4일 입춘. 사주 명리학에서는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란 동갑내기 쥐띠생들. 정말일까. 같은 쥐띠생이 다 대박 나진 않을 텐데.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사주라도 왕자와 거지로 인생이 딴판일 수 있는데.
궁금해서 복채를 줄 필요 없는 인공지능(AI)에 내 사주를 넣고 신년 운수를 물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그럴듯하기도 했지만, 답이 없는 문제를 푼 듯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행복에 정해진 답이 어디 있나. 운도 움직이니 한자로 움직일 운(運)자를 쓰지 않나.
이만큼 살아도 인생은 어렵고 나만의 인생철학이 생기진 않는다. 젊은 시절 한때 나는 쇼펜하우어에 빠졌다. 삶은 고통이다. 욕망은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한다. 행복도 환상일 뿐이다. 기대하지 마라. 그러면 실망도 없다. 세상과 인생에 걱정이 많은 나는 상처받지 않게 내게 예방주사를 놓듯 그런 말들을 중얼거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여성 비하와 염세적인 그 철학자의 신랄한 인생관을 그의 삶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부유하고 성공한 상인이었으나 행복하지 않았다. 15세에 아버지와 함께한 유럽 일주 여행에서 그는 빈민가 아이들과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는 갤리선 노예들을 목도하며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가 17세일 때 아버지는 자살했다. 부자 아버지의 유산 덕에 그는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화려한 생활을 하며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명랑한 어머니와 사람 접촉을 싫어하는 그는 절연했다.
예민한 그는 하녀와 사소한 실랑이 끝에 실수로 팔을 다치게 해 하녀에게 고소당했다. 이 일로 하녀는 죽을 때까지 그에게서 연금을 뜯어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여성에 대한 신뢰가 없는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대척점에 있는 칸트는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지는 철학자다. 그는 너무도 가난하지만 성실한 마구 장인인 아버지와 경건하고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약골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읜 그는 가장이 돼 학업을 포기하고 귀족 가문 자녀를 돌봤다. 세상의 쓴맛을 보며 상류사회 예절과 세련된 매너를 익혔다. 9년간 모은 돈으로 31세에 학생으로 돌아왔다. 생존을 위해 살인적인 일정으로 강의를 오래 한 그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스타 강사였다. 46세의 늦은 나이에 교수로 임명됐고, 157㎝의 작은 키에도 매너와 입담으로 사교계의 인기남이었다. 매일 점심시간에는 다양한 사람을 초대해서 함께 행복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두 철학자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하고 정확한 루틴과 집중력으로 사색과 집필을 했고 매일 평생 혼자만의 산책을 고수했다. 칸트는 오후 3시 반, 쇼펜하우어는 오후 2시. 그리고 두 철학자는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 쇼펜하우어는 72세에 소파에서 신문을 읽던 모습으로, 칸트는 80세에 제자와 추종자가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평안한 미소를 머금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Es ist gut(이대로 좋구나).”
철학자도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자신들의 운명과 삶에서 불행과 고통으로 단련 받지만, 보석 같은 인생철학을 길어 올린 그들은 정녕 위대하다. 하지만 소설가인 나는 어려운 철학사상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며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 새해에 나 또한 나의 삶의 태도를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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