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년 전인 2015년, 디터 제체(Dieter Zetsche) 전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자율주행 콘셉트카 F015를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럭셔리는 ‘시간과 공간’이 될 것이라고. 과거의 럭셔리가 파워와 소재, 브랜드 엠블럼 같은 물질적 우위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럭셔리는 그 너머를 바라본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개인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과 ‘안락한 개인적 공간’이야말로 가장 희소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코코 샤넬의 말처럼, 럭셔리의 반대말은 ‘빈곤’이 아니라 ‘천박함’이다. 자동차에서의 럭셔리 역시 단순한 가격표가 아니라, 가장 우아하고 안락하게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하이엔드 세단 실내에 앉아 있으면, 묘하게 로맨틱하다.
이제 럭셔리의 척도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경험하는가’로 이동했다. 하차감을 논하는 일은 점점 촌스러워진다. 도심의 소음과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나만의 안식처. ‘움직이는 스위트룸(Mobile Suite)’. 이것이 지금 하이엔드 모빌리티가 향하는 방향이다.

럭셔리의 첫 번째 조건은 정숙성(NVH)이다. 이 영역의 절대 기준은 단연 롤스로이스(Rolls-Royce)다.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 소리뿐이다.” 1958년,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남긴 이 카피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럭셔리 세단의 지향점이다. 오늘날 롤스로이스의 전기차 스펙터는 이 철학을 전동화 시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100kg에 달하는 흡음 설계는 기본이고, 타이어 내부 공명음까지 제어한다. 과거에는 기계적 완성도로 침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차체 전체가 거대한 공명 체임버처럼 설계된다. 그 결과, 탑승자의 사유를 방해하지 않는 ‘숭고한 결계’가 완성된다.

고요함을 소리로 채워 또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브랜드도 있다. 로터스(Lotus)다. 콜린 채프먼의 철학이 ‘경량화를 통한 속도’였다면, 오늘날 로터스는 ‘몰입을 통한 감각’으로 방향을 넓힌다. 카 오디오의 본질은 방음이다. 아무리 뛰어난 스피커라도 외부 소음이 유입되면 의미가 없다. 로터스 엘레트라와 에메야는 노이즈 캔슬링(RNC)으로 외부 소음을 지운 뒤, 영국 하이엔드 오디오 KEF의 23개 스피커 시스템과 돌비 애트모스를 결합했다. 차 안은 곧 3D 서라운드 스튜디오가 된다. 최근 만난 한 오너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차에서 게임 한 번 해보셨어요? 못 내립니다. 진짜로.”

과거 럭셔리카의 뒷좌석은 신문이나 서류를 펼치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BMW는 7시리즈의 ‘시어터 모드(Theater Mode)’를 통해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어의 터치 커맨드를 누르는 순간, 선 블라인드가 자동으로 내려오고 조명은 영화 감상에 맞게 조율된다. 그리고 천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31.3인치 8K ‘시어터 스크린’. 울트라 와이드 파노라마 비율과 바워스&윌킨스 서라운드 사운드는 정체된 도로를 단숨에 프라이빗 극장으로 바꾼다. ‘Sheer Driving Pleasure’(순수한 운전의 즐거움)를 외치던 BMW가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며 ‘Joy of Riding’(탑승의 즐거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가죽 향이 곧 부의 증명서였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오늘날 하이엔드 소비자들이 찾는 럭셔리는 시각적 화려함이 아니라, 그 이면의 가치다. 벤틀리(Bentley)는 이 흐름을 빠르게 읽었다. 전통적 가죽 중심 인테리어에서 벗어나 스코틀랜드산 최고급 울(Wool)과 100% 재활용 트위드 직물을 도어 트림에 적용한다. 가죽이 줄 수 없는 따뜻한 홈 인테리어 감성이다. 와인 생산 과정에서 남은 포도 껍질과 줄기로 만든 100% 식물성 비건 가죽 ‘베제아(Vegea)’ 역시 선택 가능하다. 이는 원가 절감이 아니다. 환경 보호와 희소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의식 있는 부(Conscious Wealth)’의 전략이다. 이제 자동차의 인테리어는 단순한 소재의 나열이 아니라, 오너의 지적 태도와 윤리적 신념을 드러내는 캔버스다.

엔초 페라리는 엔진이 곧 페라리의 본질이라는 철학을 고수했다. 트랙 위 0.1초의 승부에만 집중하던 브랜드는 이제 일상으로 확장한다. 페라리(Ferrari) 푸로산게는 브랜드 최초의 4도어 4인승 모델이다. 백미는 코치 도어다. 앞뒤 문이 마주 보며 열리면 B필러 간섭 없이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은 단순한 승하차가 아니다. 마치 레드 카펫 위로 초대받은 주인공이 된 듯한 연출이다. 페라리는 좁은 콕핏의 순수성을 넘어, 가장 관능적인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당신의 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다. 도심의 소음과 매연을 차단하고, 조도와 온도를 당신의 기준에 맞춰 큐레이션 한 하나의 공간이어야 한다. 롤스로이스의 고요한 천장 아래서 사색에 잠길 것인가. BMW 7시리즈 뒷좌석에서 영화 한 편을 즐길 것인가. 혹은 로터스 안에서 KEF 스피커로 재즈를 들을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취향이다. 분명한 것은, 삶의 질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 아늑한 밀실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붐비는 핫플레이스를 찾아 헤매기보다, 가장 안락한 당신의 스위트룸으로 소중한 사람을 초대해 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움직이는 스위트룸’은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취향은 속도보다 먼저, 공간을 선택한다. 다음 5가지 문장을 읽고, 당신에게 더 가까운 쪽에 ?를 해보세요. ‘YES’의 개수를 세면 됩니다.
1. 좌석(Seat)
나는 누군가의 뒷좌석에 앉는 것보다, 스티어링 휠을 직접 쥐고 공간을 통제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2. 음향(Sound)
완벽한 침묵도 좋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8기통의 배기음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음악이라 믿는다.
3. 주목도(Attention)
차에서 내릴 때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보다는 묘하게 짜릿하다.
4. 테크(Tech vs Craft)
대형 디지털 스크린보다 가죽의 질감,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 소리가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5. 드라이브(Drive)
목적지에 ‘편안하게’ 도착하는 것보다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결과 확인
▶ YES 0~1개
Type A. 고요한 지배자, The Sovereign
추천 모델: 롤스로이스 스펙터 / 벤틀리 플라잉 스퍼 / BMW i7
당신에게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다.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는 하나의 ‘결계’다. 빛과 온도, 소리까지 통제된 공간에서 당신은 비로소 생각하고, 계획하고, 정제한다. 럭셔리는 당신에게 과시가 아니라 완벽하게 정돈된 침묵이다.
▶ YES 2~3개
Type B. 이성적인 쾌락주의자, The Smart Perfectionist
추천 모델: 포르쉐 파나메라 / 로터스 엘레트라 / 벤틀리 벤테이가
당신은 균형을 안다. 편안함과 스릴, 디지털과 아날로그, 합리성과 욕망 사이에서 가장 세련된 지점을 선택한다. 당신의 차는 달릴 줄도 알고, 멈춰 있을 줄도 안다. 균형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취향이라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 YES 4~5개
Type C. 도로 위의 야수 조련사, The Adrenaline Romantist
추천 모델: 페라리 푸로산게 / 람보르기니 우루스 / 포르쉐 911
정숙함은 당신에게 휴식이 아니라, 정적이다. 폭발적인 성능, 관능적인 디자인, 그리고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 당신은 목적지보다 장면을 사랑한다. 도착보다 등장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조두현 위트웍스 대표(모빌리티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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