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론은 1999년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의 연구에서 체계적으로 검증됐다. 그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리, 문법, 유머 감각 등을 평가한 뒤 “자신의 성적이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할 것 같은가”를 스스로 예측하게 했다. 결과는 극명했다. 하위 25%에 속한 학생들은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했고, 상위 25% 학생들은 오히려 자신의 순위를 실제보다 낮게 예측했다.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을 알아볼 능력조차 부족했고, 유능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이 효과의 출발점이 된 사건은 다소 황당하면서도 상징적이다. 1995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은행 강도를 저지른 맥아더 휠러는 복면도 쓰지 않은 채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얼굴에 레몬주스를 바르면 CCTV에 찍히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레몬주스가 편지에 쓰이는 ‘투명 잉크’로 활용된다는 사실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고, 그 원리를 카메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종이에선 열을 가해야 글씨가 드러나듯, 카메라 역시 자신을 포착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안타깝게도 카메라는 그의 믿음을 따르지 않았다. 체포된 뒤 그는 “레몬주스를 발랐는데 왜 보였느냐”고 진심으로 되물었다. 무지는 단순한 정보의 공백이 아니다. 잘못 이해한 지식이 만들어낸 과잉 확신이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신이 더닝-크루거 효과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현상을 그래프로 그리면 이른바 ‘우매함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지식을 조금 습득한 초기 단계에서 자신감은 급격히 상승한다. 그러나 배움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모르는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깨닫게 되고, 자신감은 오히려 하락한다. 이후 지속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실력과 자신감이 함께 안정적으로 올라간다. 찰스 다윈은 《The Descent of Man》에서 이렇게 썼다. “무지는 지식보다 더 자주 확신을 낳는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말이다.
그렇다면 근자감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단순한 겸손일까. 최근 연구들은 조금 다른 답을 내놓는다. 무엇이든 잘 배우는 사람은 IQ가 아니라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사고를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능력, 즉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점검하는 힘이다.
베이징사범대학의 양춘량 교수와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David R. Shanks 연구진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생소한 스와힐리어 단어를 학습하게 한 뒤, 각 단어를 얼마나 잘 외웠는지 스스로 예측하게 하고 이후 주관식 회상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완전히 학습했다”고 판단한 항목에 대해서는 실제 회상 성과와 높은 정적 상관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이들은 “아직 완전히 학습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항목에서 오히려 자신의 학습 상태를 실제보다 더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시 말해, 잘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약간 과장해 인식한다. 그 결과 남은 학습 자원을 그 부분에 집중적으로 재배분한다. 거의 완성된 영역조차 ‘미완성’으로 간주하며 끝까지 점검한다는 뜻이다.
메타인지가 높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 판단이 정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엄격하다. 이 미묘한 ‘자기 과소평가’가 추가 학습을 촉진한다. 그래서 잘 배우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는 자신감 있어 보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지나치게 겸손해 보인다. 이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전략의 차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차이는 객관식 시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주관식 평가에서만 미세한 메타인지 차이가 관찰됐다. 이는 조직과 학교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진짜 역량은 정답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해 수준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근자감과 진짜 실력을 구분하기 어렵다.
조직에서 근자감을 가진 직원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개적 질책은 대개 방어적 태도만 강화한다. 대신 객관적 데이터와 구체적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스스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지적 겸손을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아니라 타인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다. “I may be wrong”이라는 전제가 학습의 출발점이다.
무지는 확신을 낳지만, 성장은 자기 검열을 낳는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능 그 자체가 아니라 무지를 확신으로 착각하는 태도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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