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관세 정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을 넘어선 정교한 압박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방의 말투’를 문제 삼아 관세를 올리는 즉흥성을 보이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입법 지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밀 타격에 나섰다. 통상당국이 잇단 고위관계자들의 방미를 통해 일단 파국은 막아냈으나, 한국 카운터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장관이 스캔들로 낙마 위기에 처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스위스에 대한 관세를 기존 30%에서 39%로 9%포인트 인상한 배경을 공개했다. 그는 “스위스 총리(정황상 카린 켈러-주터 전 대통령을 일컬음)가 통화에서 매우 공격적(Aggressive)이었다”며 “자꾸 ‘우리는 작은 나라’라는 말만 반복하며 전화를 끊어주지 않아 즉석에서 관세를 더 올리라(30%에서 39%로 상향)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가관계를 좌우하는 관세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 셈이다.
한국의 경우 스위스 사례와는 다소 차이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트루스소셜에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할 것"이라면서 "한국 입법부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입법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무역 합의들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합의된 거래 내용에 맞춰 우리의 관세를 신속하게 인하하는 행동을 취해왔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교역 상대국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 메시지가 평소 트럼프의 거친 말투와 달리 매우 정제되고 구체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한국 내부의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보고하는 비선 참모나 정책 그룹의 각본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이 조직적으로 '트럼프 메시지'를 상대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캐나다 상황은 더욱 극단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1기에 맺었던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탈퇴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의 이익, 혹은 트럼프의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적대적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불확실한 사례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에 대한 관세 위협이 잦아든 것은 일시적 유예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대미투자특별법 통과가 지연되거나 내용이 후퇴할 경우, 트럼프의 SNS는 언제든 한국을 향해 다시 불을 뿜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앞서 관세협상을 타결하면서 쌓인 신뢰 관계를 쌓았다. 현재 한국이 25% 관세 재인상 위협에서 벗어난 이유도 이 관계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이 인적 고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러트닉 장관은 현재 엡스타인 파일 관련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이며 미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그는 과거 엡스타인과의 접촉 횟수를 청문회에서 축소 보고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공화당 내에서도 용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은 그를 신뢰하고 있어 당장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논란이 확산될 경우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며 "러트닉 장관이 사퇴할 경우 한국과 일본의 대미투자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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