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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공소기각' 법원이 직격한 檢 '별건 수사' 실체는 [정희원의 판례 A/S]

입력 2026-02-17 20:21   수정 2026-02-17 20:22

다수가 생각하는 정의와 법의 정의는 왜 다를까요. '정희원의 판례 A/S'에선 언뜻 보면 이상한 판결의 법리와 배경을 친절히 설명해드립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오세용)는 지난 9일, 김건희 여사의 ‘집사’로 불리는 김예성 씨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에 대해 일부 무죄와 공소기각을 선고했습니다. '공소기각'이란 기소 절차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어, 법원이 사건의 실체를 아예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처분입니다. 김 여사 민중기 특검이 180일간 공들여 수사한 '집사 게이트'의 핵심 혐의가 재판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퇴짜를 맞은 셈입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김 씨가 설립한 렌터카 플랫폼 'IMS모빌리티'가 카카오모빌리티, 효성, 신한은행 등 대기업으로부터 받아낸 184억 원의 투자금에 있습니다. 특검은 이 투자가 'V0'로 불리는 김 여사와의 친분을 노린 대가성 거래라고 보고 별건의 횡령 혐의(24억 원)를 함께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혐의는 특검법의 수사 범위를 벗어났다"며 판단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죄의 유무를 떠나 '수사할 권한이 없는 곳에서 수사했다'는 취지입니다.
맹장 터질까봐 배 열었는데 '암'이 보인다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죄가 드러났는데 왜 처벌을 못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병원 수술실 상황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환자(피의자)가 상한 음식(범죄 혐의)을 먹고 탈이 나서 병원에(수사 기관) 왔습니다. 의사(검사/특검)는 진찰을 하더니 '맹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린 후 "이대로 두면 맹장이 터질 수도 있다"며 환자의 구체적인 동의와 무관하게 마취(압수수색/구속)후 수술(수사)에 들어갑니다. 상황이 급하니 일단 긴급하게 배를 가른 것이죠.



그런데 막상 배를 열어보니 맹장은 괜찮은데, 뜬금없이 옆에 있는 대장에서 암 덩어리(별개의 범죄)가 발견됐습니다. 의사는 고민에 빠집니다. 허락받지 않은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섭니다. 하지만 결국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의 추가 동의 없이, 오로지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암 제거 수술을 마쳤습니다.

결과적으로 환자는 암을 제거했으니 고마워해야 할까요? 현실에서는 모두가 좋은 상황일 수 있지만 법의 논리는 다릅니다. 법원은 이를 '동의 받지 않은 불법 수술(상해)'로 봅니다. 환자는 맹장 수술(본래 영장에 적시된 혐의)만 허락했지, 대장암 수술(별건 혐의)은 허락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사 게이트' 공소기각의 핵심 논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특검은 당초 김건희 여사라는 'V0(‘V(대통령)보다 앞선 실세)'를 겨냥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 등 대기업들이 하필이면 김 여사와 막역한 김예성 씨가 설립한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한 점을 의심한 것입니다. 이 투자가 사실상 김 여사를 향한 뇌물이거나 대가성 거래라고 보고 배를 가른 (수사를 시작한) 것 이죠.

하지만 막상 수사(수술)를 해보니 김 여사와의 연결고리보다는 김예성 씨 개인이 회삿돈을 빼돌린 횡령 정황만 툭 튀어나왔습니다. 대장암이 온몸에 퍼진 줄 알았는데 사실 일부만 퍼진 거죠.특검 입장에선 “하다 보니 암이 나왔으니, 환자 동의를 구하거나 필요한 조치만 하고 계속 수술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하다 암을 발견했으니 전부 도려내는 게 당연하다”며 암 수술로 넘어가면, 법원은 “동의한 수술 범위(특검법 수사 대상)를 벗어난 불법 수술”이라며 수술 자체를 무효로 본다는 겁니다.

무소불위 檢 권력 '별건 수사'
이같은 별건 수사는 사실 오랫동안 검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동시에 ‘인권 침해’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에서든 검찰은 본래 수사에 착수한 사건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피의자의 가족, 친구, 학창 시절까지 털어 별건으로 압박하고, 원하는 수사 결과를 얻어내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죠.

역사적으로도 이에 따른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은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굵직한 재벌 수사나 정치적 사건에서 별건 수사는 단골손님이었습니다. 기업 총수의 비자금을 수사하겠다고 들어가서 나오라는 비자금은 안 나오니, 계열사 사장의 개인 횡령이나 채용 비리를 들춰내 "총수의 비리를 불라"고 압박하는 식입니다. 이는 수사 편의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표적 수사', '먼지 털기 수사'라는 오명을 써왔습니다.

논란이 많은 수사 기법인 만큼 최근 법원이 이에 대해 이례적으로 직격탄을 날린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의 시세조종 혐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김 창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하면서 본류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검찰을 꾸짖었습니다. 검찰이 핵심 증인의 별건 혐의를 쥐고 흔들어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고 본 것입니다.
"암 덩어리 보고도 덮으란 말이냐"
물론 검찰이나 특검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습니다. 수사기관의 본분은 범죄를 척결하여 사회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배를 가르니(수사 시작) 암세포(범죄)가 뻔히 보이는데, 허락받지 않았다고 도로 덮고 나오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대 범죄를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직무 유기"라며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해서는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토로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법원도 수사 밀행성과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어느 정도의 별건 수사는 '수사의 기법'으로 용인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법원은 이제 '실체적 진실'만큼이나 '절차적 정의'를 중요하게 봅니다. 아무리 나쁜 놈을 잡는 정의로운 칼이라도, 그 칼을 휘두르는 방식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김건희 여사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 해법이 '불법적인 수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2차 특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배를 무작정 헤집는 무딘 칼이 아니라, 환부만을 정확히 도려내는 정교한 '메스'와 같은 수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나쁜 놈을 잡기 위해서라면 절차를 좀 어겨도 되는가, 아니면 범인을 놓치더라도 법이 정한 절차는 지켜야 하는가."의 질문에서 법원은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뚜렸하기 때문이죠.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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