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전에는 '체제 보장'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핵무기를 가진 (다른 나라들과) 대등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북한 전문 연구조직 38노스 소속 이민영 선임 연구위원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체제를 보장받는 것이라는 관점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까지였다"면서 "이후에 북한의 대미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하노이 회담 후 내부적으로 미국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이유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과정을 북한이 자세히 들여다봤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은 종합적으로 '미국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보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이러한 생각을 깊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4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참전한 것은 이런 맥락 안에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필두로 하는 반미 반서방 블럭의 주요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너무나 묘수였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국제적으로도 북한이 글로벌 미디어에 다뤄지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주목을 받게 됐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면서 양국 간에는 장기적인 공동 계획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한 예로 "러시아는 극동 지방의 인력이 부족해서 개발을 못하는데, 거기에 북한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꼽았다. 유럽에서 러시아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논조가 "발전이 많이 된 나라, 산업화된 나라, 협력해야 하는 대상" 등으로 많이 변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을 한 수 아래로 여겨 왔던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봤다. 작년 9월 열병식에서 북-중-러 3국 정상이 나란히 서는 모습을 연출한 것은 "북한이 요구한 것이고, 마음이 급해진 중국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이 연구위원은 해석했다. "과거에는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회담 같은 중요한 사건의 전후에 중국과 접촉했다면, 지금은 러시아와 그것을 하고 있다"는 근거를 댔다. 이 연구위원은 "중국은 '패싱'을 우려한다"고 했다.
북한이 '공산주의'를 지향하는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가도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이 연구위원은 "김정일 전 국무위원장 말기에는 사회주의로 가자고 했는데, 2021년 8월 당대회에는 '공산주의'가 당규약에 들어갔다"면서 "그러면서 2024년 말에 미국이 가장 반 제국주의적인 반공국가라고 평가했는데, 이것은 미국을 적대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미국과 같이 갈 수 없다는 관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와 같이 가야 하는데,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문제 등에서 '책임 있는 국제 리더' 모양새를 취하고 싶어하는 중국보다 러시아가 훨씬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떄문에 북한이 러시아에 기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해 여전히 '트럼프 1기'의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정상 간의 만남 등을 선호하고 있고, 올 하반기 무렵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워싱턴 일각에서 거론된다. 다만 북한은 이런 접근에 대해 아직까지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대한 비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핵무기 군축 협정인 뉴 스타트가 지난 5일 종료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 중국을 포함하는 새 핵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또다른 레버리지로 활용하려 할 여지가 있다.
북한 비핵화라는 의제에 대한 지지는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작년 말에 나온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과 올해 초에 나온 '국가국방전략(NDS)' 문서에서 북한 비핵화에 관한 내용이 전무했던 점과 관련해 이 연구위원은 "(여러 문서에서) 전체적으로 비핵화를 다 빼는 분위기가 있고, 북한이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모두 북한 비핵화를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는 뚜렷하다고 봤다. 그는 작년 10월 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 벨라루스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측과 회담 결과를 밝히면서 "현 국가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표현을 쓴 점을 주목하면서 "러시아 측에서는 그 표현이 빠져 있었는데,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뜻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 연구위원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북핵이 용인될 가능성이나 용인 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서는 "의제 세팅 같은 부분에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비핵화를 아예 언급을 하지 않기를 북한은 원할 것인데 '지금은 비핵화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하는 정도라면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거래하고자 하는 대상은 첫째는 북핵 용인이겠지만 다른 옵션도 있다. 경제 제재와 주한미군에 대한 위상 변화, 한미합동 군사훈련 등 역내 미군태세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은 경제 제재를 풀어주면 좋지만, (핵 문제가 훨씬 크기 때문에) 제재가 풀리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주한미군에 관한 문제는 북한이 보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 제제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러시아가 대놓고 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그러한 대가를 치르려 할 의지가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여러 상황은 이달 하순에 개최될 예정인 북한의 9차 당대회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연구위원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을 맡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다섯 나라 중 일부(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 주려는 추세가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대한 외교적인 평가가 당대회에서 거론될 수 있다"고 그는 내다봤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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