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현지시간) 오후 10시 중국 베이징 조양구 왕징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평소엔 상당수 가구의 거실 불이 꺼졌을 시간이지만 이날만큼은 대부분 가구의 거실에 환한 불이 켜져 있었다. 아파트 통유리 창을 통해 나오는 불빛의 색도 동일했다.
중국 중앙방송(CCTV) 춘제 특집 갈라쇼인 2026년 춘완이 TV 화면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춘완은 음력 설 전일 저녁 진행되는 설 특집 방송 프로그램이다. 중국에선 온 가족이 모여 시청하는 게 대표적인 설 풍습이다.

매년 춘완 시청자 수만 10억명이 넘는다. 중국 인구 수를 감안했을 때 대부분의 가구에서 시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춘완은 개혁 개방이나 우주 개발, 첨담기술 발전 등 국가적인 과제를 무대로 연출해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해왔다.
이런 이유로 춘완에 참여하는 기업에는 단순한 방송 출연 이상의 의미가 부여된다. 기업의 기술력을 공개적으로 뽐낼 수 있는 데다 향후 중국 정부의 각종 공공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다. 지난해 춘완의 경우 시청횟수가 28억회를 넘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춘완에 참여할 수 있는 아니다. 비싼 참여 비용 때문이다. 춘완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기 위해선 적게는 6000만위안(약 125억원)에서 1억위안까지 감수해야 한다.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의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춘완 참여가 쉽지 않은 구조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빅테크나 대형 기업들이 참여하는 일이 많다. 올해 춘완에서도 콘텐츠 곳곳에 중국 최고급 백주 제조사 구이저우마오타이나 중국 대표 빅테크 화웨이의 제품과 로고 등이 수시로 노출됐다.

유니트리의 라이벌로 꼽히는 중국 로봇 스타트업 애지봇은 이런 이유에서 춘제에 앞서 지난 8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200여개를 동원해 단독 대형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로봇의 신기한 밤'이라는 개별 콘텐츠를 제작해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것이다.
개막 무대에서는 20여대 휴머노이드 로봇이 '칼군무'를 선보였다. 이 가운데 한 대는 공중에서 와이어를 타고 무대 위를 가로질렀다. 무술 공연에서는 로봇 수십 대가 중국 전통 무술 동작을 재현했다. 팔과 다리 관절이 단순히 비슷하게 움직이는 수준이 아니라 힘의 전달까지 계산됐다.

로봇과 인간 배우가 함께 출연한 단막극에서는 인간과 대사를 주고받고 타이밍을 맞춰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줬다. 로봇 마술사가 등장해 카드 마술을 선보이는 장면도 공개됐다.
애지봇 측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로봇의 복합 동작 제어, 집단 협업 기술, 공연 환경에서의 안정적 시스템 운용 능력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올해 춘완에선 로봇이 아닌 가수의 일반 공연이나 인터뷰, 현장 상황에서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이미지와 동영상을 적극 활용했다.

AI 동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2.0' 출시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힌 상황에서 올해 춘완 무대엔 유독 AI 동영상 생성 무대가 부각됐다.
최근 바이트댄스가 내놓은 '시댄스 2.0'은 사진 한 장과 간단한 프롬프트(명령어)만으로도 15초 분량의 자연스러운 동영상 제작이 가능한 동영상 생성 모델이다. 진입 장벽은 낮고 완성도는 높다는 점에서 지난해 '딥시크 모멘트'에 이어 '시댄스 모멘트'를 불러올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한 올해 춘완에선 유난히 글로벌 연결성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많이 방영됐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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