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이 잇따르고 있다. 한 대에 300억엔이 넘는 고가 장비지만, 지난해 세 대가 설치됐다. 첨단 반도체 개발에서 철수했던 일본은 ‘EUV 불모지’였지만, 정부 지원으로 산업 부활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를 다루는 네덜란드 ASML이 최근 발표한 작년 결산에서, 노광장비의 일본 수출 증가율이 주목받았다. 약 12억달러로 전년 대비 40% 급증했다. 증가율로는 대만과 한국을 제치고 1위였다.
이를 견인한 것은 EUV다. 일본 ‘반도체 연합군’ 라피더스는 2024년 12월 EUV 장비 반입을 시작해 이듬해 3월 설치를 마쳤다. 라피더스 관계자는 “작년 말까지 두 번째 EUV 장비 도입도 끝냈다”고 밝혔다.
홋카이도 지토세 공장에서 일본 최초로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피더스는 나아가 1.4㎚ 제품을 양산하기 위해 인접 부지에 2공장을 2027년 착공할 예정이어서 더 많은 EUV 장비가 필요하다.
미국 마이크론도 작년 5월 히로시마 공장에 EUV 장비를 도입했다. 인공지능(AI)용 메모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5월 새 공장을 착공해 AI용 메모리 증산 방침을 세웠으며, 여기서도 EUV 장비를 추가로 사용할 예정이다.

EUV는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데 사용된다. 장비 전체 무게는 약 70?, 높이는 3m가 넘는다. 특수 광원이나 렌즈 등 여러 부품을 조합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라고도 불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유럽 출장 중 이 장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직접 ASML을 방문하기도 했다.
ASML은 2010년 첫 EUV 시제품을 출하했다. 양산 단계에 들어선 2020년 이후 2025년까지 대만, 한국, 미국을 중심으로 누적 258대를 판매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24년까지 키옥시아가 시제품을 도입한 것이 전부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반도체가 일본의 경제 안보상 중요 물자로 지정되면서다. 경제산업성은 2021년 6월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을 공표했다. 이 전략에 따라 2022년 설립된 라피더스를 지원하고 대만 TSMC 공장 유치에 나섰다.
TSMC는 구마모토에서 2024년 말 가동한 1공장에 이어 2027년 2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당초 6㎚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3㎚로 변경했다. 6㎚ 대비 3㎚는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기 때문에 필요한 EUV 장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에 EUV가 늘어난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며 “EUV를 활용한 개발·양산을 궤도에 올리려면, 첨단 반도체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기업을 국내에서 육성하는 등의 노력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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