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소상공인이 돼 장사도 해보고 장애인과 하루를 지내다 보면, 법을 어떻게 만들어야 세상을 더 따뜻하게 할지 혜안을 얻게 됩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부산 해운대을)은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30회를 맞은 소상공인 및 장애인을 위한 현장 봉사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김 의원은 틈이 날때마다 저소득층이 밀집한 부산 재송동·반송동 일대의 돼지국밥집, 삼겹살집 등 영세 식당을 찾아가 직접 요리부터 손님 응대, 설거지까지 도맡아가며 영업을 돕는다.
매년 지역 소상공인 식당 돕기위해 신체검사 받고 보건증 발급
2021년부터 현재까지 23번째 이어진, 국회의원으로는 전례가 없는 형태의 봉사활동이다. 이를 위해 김 의원은 매년 신체검사를 받아 식당 종사자에게 필수인 보건증을 발급받는다. 최근 한 횟집에선 김 의원이 직접 회도 썰고 10개 넘는 테이블에 서빙해가며 식당 개업 이후 최대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김 의원은 "코로나19 사태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상공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식당 운영 경험자로 조금이나마 용기를 드리고자 봉사를 하고 있다"며 "실물 경기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일명 '블랙컨슈머'로 불리는 악성 소비자의 허위 후기 게시, 별점 테러 등을 방지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란우산공제 가입 시 세제 혜택을 주는 소득세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다. 이 공로로 지난해 말 소상공인연합회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 평생의 소원 들어주기'나서...무안 여객기 참사땐 현장서 수습 돕기도
김 의원의 남다른 봉사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 의원은 거동이 불편하고 외출이 어려웠던 장애인·말기암 환자·6·25 참전 용사 등을 찾아가 이들이 꿈꿔온 '버킷리스트' 국내 여행지에 하루 동안 동행하는 봉사도 하고 있다. 2022년부터 반기별로 진행하는 일명 '약자와의 동행'프로젝트로 현재까지 7번째 진행됐다. 김 의원은 "표가 되고 돈이 되는 거대 집단이 아니라, 소외된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도 매번 느낀다"고 했다.

2024년 179명의 사망자를 낸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엔 예고 없이 현장으로 내려갔다. 김 의원은 "시신의 부패가 진행돼 유족들도 발을 동동 굴리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며 "그때 함께 간 김은혜·권영진·이성권 의원과 밤새 이동식 냉동 안치실 작업을 거들며 유족들의 곁을 지켰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당시 사랑의 열매를 통해 유족들에게 긴급 자금이 지원되도록 도왔다.
살해 유기되어온 500명 영아 살려낸 '위기 임신 보호출산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그는 출생신고 없이 태어난 영아가 살해·유기되는 것을 막아 현재까지 500명이 넘는 아이를 살려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대표 발의하고 2024년 7월 법 시행을 관철시킨 '위기 임신 보호출산제' 덕분이다. 이 제도는 임신·출산 사실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미혼모 등 임산부로부터 아기가 버려지는 것을 막는 제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법 시행 후 지난해 말까지 총 1만2135건의 상담이 이뤄졌고 508명의 아이를 살린 것으로 집계됐다. 약 500일 동안 매일 1명의 생명을 지킨 셈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국회의원 배지 위에 '24시간 위기임신 안심상담' 전화번호를 뜻하는 '1308' 배지를 항상 달고 다닌다. 김 의원은 "뜻밖의 임신 여성과 생명을 잃을 위기에 빠진 아기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만든 법"이라며 "국회의원들이 표가 되는지, 돈이 되는지를 따지지 말고 극소수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에게 적극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부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 설 연휴에도 국회의원이 지급받는 명절 휴가비와 세비를 합한 1400만원을 지역 내 중증 장애인, 청소년 쉼터, 위기임신 상담센터, 미혼모 센터, 노인복지관 등에 기부했다. 2020년 국회 첫 입성 후 현재까지 약 2억원을 기부했다.
고1때 방직공, 20대 식당 운영, 28세 대학 진학, 인권 변호사, 입양, 국회의원 당선
그의 시선이 항상 약자와 나누는 삶을 향한 것은 그의 굴곡진 삶 덕분이다. 김 의원은 중학교 2학년이던 14세에 말기 암을 앓던 어머니를 여의면서 집안이 가난해졌고 고등학교 1학년때는 버스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방직공장에서 여공의 삶을 살다 잡화점 직원 등을 거쳐 몇 년간 모은 돈으로 작은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가 영세 식당에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는 것도 당시 경험 때문이다. 그는 28세에 뒤늦게 야간 대학에 진학했고 34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이후 국선 변호사로 15년간 760건 넘는 변론을 담당했다. 그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언니의 아들을 키웠고 딸을 입양한 싱글맘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와 오빠 등의 죽음을 일찍 접하면서 어떻게 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괜찮은 삶을 살까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노예제와 노예무역 폐지법 제정에 앞장선 영국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 흑인 노예제를 폐지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미국 뉴욕의 도시재생 성공 사례를 만든 도시계획자 아만다 버든 등이 인생 롤 모델이라고 했다.
그는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당시 부산 최다 득표율(58.33%)을 기록했다. 김 의원에게 최근 당내 상황에 관해 질문하자 먼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당내 권력 다툼이 너무 심하다"며 "이런 혼란기일수록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민생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