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서울시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 광장은 수문장 교대식을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빠의 목마를 탄 어린아이부터 두 손을 잡은 노부부까지 남녀노소 모두 이른 시간부터 광화문을 찾았다. 시계가 오전 10시 정각을 가리키자 취타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이어 교대수문장이 교대수문군을 이끌고 광장 중앙으로 향했다. 모두가 이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손을 바삐 움직였다.
관람객을 인솔하던 한 직원은 "설 연휴 동안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며 "(설 당일인) 어제는 오늘보다 관람객이 훨씬 많이 왔다"고 말했다. 평소의 경우 만 25세부터 만 64세까지 대인의 경복궁 입장료는 3000원이지만 설 연휴 기간에는 경복궁 관람이 무료였기 때문이다. 설을 맞아 국가문화유산청은 지난 14일부터 5일간 4대 궁(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무료로 개방했다.

이날 시민들이 경복궁을 찾은 이유는 무료 개방 때문만은 아니었다. 흥례문 광장에서는 설 연휴에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2026년 병오년 설맞이 세화 나눔' 행사다. 세화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준 그림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가 담겼다. 경복궁에서는 지난 16일부터 3일간 세화 나눔 행사가 진행됐다. 수문장 교대식이 끝난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선착순 1000명에게 세화를 증정했다.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되기도 전 흥례문 광장 좌측에는 세화 나눔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만난 이모 씨는 "설 연휴를 맞아 경복궁도 구경하고 세화도 받으려고 왔다"며 "오전 10시 전부터 기다렸는데 30~40분 정도 줄을 선 것 같다"고 말했다. 긴 대기 시간에도 세화 나눔을 기다리는 대기 줄은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오전 10시50분께 대기가 마감되면서 일부 시민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세화 모으기가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붉은 말 수문장이 그려진 세화를 보여주며 이 씨는 "5년 전부터 매년 세화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강나연 씨도 "2년 전 처음으로 세화 나눔 행사에 갔다"며 "이번에도 세화를 받으려고 언니와 함께 경복궁에 왔다"고 했다. 올해부터 세화 모으기를 시작한 시민도 있었다. 추모 씨는 "인터넷을 보니까 세화 나눔 행사를 한다고 해서 아들과 같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찍이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 중에는 관람을 마친 뒤 인근 박물관이나 다른 궁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운 이들도 있었다. 아내와 함께 경복궁을 방문한 정영우 씨는 "다 둘러보고 오후에는 중앙박물관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설 연휴 기간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무료로 개방했다. 이 밖에 운현궁, 남산골한옥마을 등에서는 전통 놀이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운현궁 앞마당에는 윷놀이, 투호, 활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등 다양한 전통 놀이 도구가 구비됐다. 이 덕분에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윷놀이를 하고 있던 윤효정 씨는 "설 연휴 동안 아이와 도심에서 즐길 거리가 무엇이 있을지 검색해보니까 운현궁에서 전통 놀이 체험 행사를 한다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윤 씨의 차례가 다가오자 옆에 서 있던 임하윤 양은 "이제 '걸'이 나오면 엄마가 아빠 말을 잡을 수 있다"고 외쳤다. 외침대로 '걸'이 나오자 임 양은 "도·개·걸, 이제 아빠가 꼴찌고 엄마가 일등이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전에도 윷놀이를 해본 적이 있다는 임 양은 "(집 안에서보다) 밖에 나와서 하는 윷놀이가 더 재밌다"고 말했다. 곧이어 분홍빛 한복을 휘날리며 윷을 힘차게 던졌다.

전통 놀이가 낯설 법도 한데 어린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체험에 적극 참여했다. 특히 활쏘기 체험이 인기를 끌었다. 서툴게 활을 잡는 아이들 뒤에서 어른들은 "팔을 쫙 뒤로 빼야지", "손을 좀 더 위로 올려야지" 등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양궁을 해보고 싶다는 한 아이에게 아빠는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양궁'이 아니라 '국궁'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제기차기를 하던 박유원 씨는 "북촌 한옥마을을 구경하러 왔다가 운현궁에 들렀다"며 "전통 놀이 행사를 하는지 몰랐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재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은 (제기차기가) 잘 안 됐다. 12개밖에 못 찼다"며 "학교 다닐 때는 30개 이상 찼다"고 했다. 이처럼 연휴 마지막 날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시민들은 설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수 한경닷컴 기자 2s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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