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미·중 중심으로 재편되는 우주산업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가 양강의 기술·안보 영향권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이른바 ‘소버린 스페이스’(우주 주권) 전략을 본격화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위성 제조 역량을 갖춘 ‘제조 강국’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저궤도(LEO) 위성이 통신 중계용 ‘안테나’를 넘어 인공지능(AI) 연산까지 수행하는 ‘컴퓨팅 노드’로 진화하는 기술 흐름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은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발전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 미들파워 허브로서 역량을 발휘한다면 글로벌 위성 파운드리산업을 선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저궤도 위성 시대의 핵심 경쟁 요소는 발사 능력만이 아니라 ‘트래픽 처리’다. 수만 기 위성이 동시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환경에서 중계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위성이 스스로 데이터를 선별·압축·분석하는 ‘온보드 프로세싱’이 필수 기술로 떠오르는 이유다. 위성 간 데이터를 교환하는 ‘광링크’ 기술도 확산하고 있다. 위성이 점차 하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우주 컴퓨팅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안형준 STEPI 우주항공팀장은 “위성산업의 핵심 가치는 데이터 처리 능력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반도체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성이 늘어날수록 고성능 반도체와 시스템 통합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위성은 더 이상 단순한 통신 장비가 아니라 우주에 떠 있는 서버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상징하는 개념이 ‘우주 데이터센터’다. 머스크 CEO가 스페이스X와 xAI의 결합을 추진하며 장기 비전으로 우주 기반 컴퓨팅 인프라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누리호의 역할도 국내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실어 실제 우주 환경에서 작동 여부를 검증하는 ‘실증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주 데이터센터와 온보드 프로세싱 위성을 구현하려면 방사선, 진공, 극심한 온도 변화 등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반도체를 확보해야 한다. 안 팀장은 “누리호에 상용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실어 우주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작업은 우주 등급 부품을 확보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가 우주 데이터센터 및 고성능 온보드 프로세싱 위성 개발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