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중국 푸젠성 앞바다. 60층 건물 높이(146m)의 거대한 해상 풍력 블레이드가 회전을 시작했다. 중국 싼샤그룹(CTG)이 세계 1위 풍력 터빈업체인 중국 골드윈드와 손잡고 설치한 20㎿급 초대형 풍력발전기다. 기존 주력 제품(16㎿) 대비 발전단가가 20%나 싸다. 단 한 바퀴 회전으로 25㎾h의 전력을 생산하는 중국의 이런 발전기는 막대한 보조금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세계 풍력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중국 해상 풍력 생태계의 기술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상풍력 시장은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기조 속에 급성장하고 있다. 18일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64억달러이던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 규모는 2034년 2155억달러(약 287조원)로 팽창한다. 중국은 이 중 풍력발전 단가의 35%를 차지하는 터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점유율이 65%에 달한다. 강금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풍력 PD(사업총괄)는 “중국은 터빈뿐 아니라 하부구조물, 베어링, 타워 등 전 공급망을 수직 계열화해 해외 프로젝트 수주전을 패키지로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일찌감치 풍력산업을 ‘제2의 조선업’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2008년께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등 ‘조선 빅3’가 모두 뛰어들었지만 2010년대 조선업 침체로 속속 사업에서 철수했다. 전문가들은 다시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키워드는 공급망 안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에너지 안보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제조업 기반을 갖춘 한국이 해상풍력 공급망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이미 밸류체인 곳곳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국내 업체도 많다. 전체 해상풍력 사업비의 15~20%를 차지하는 해저케이블이 대표적이다. LS전선은 2022년 세계 최초로 525㎸급 HVDC(고압직류송전) 인증을 획득하며 기술 표준을 선점했다. 지난해 네덜란드 국영전력회사 테네트로부터 2조원 규모의 수주를 따냈고, 독일과 북미 등지의 수주 잔액도 수조원대에 달한다. 후발주자인 대한전선 역시 전남 영광 낙월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154㎸ 및 345㎸급 해저케이블을 공급하며 트랙 레코드를 쌓고 있다.
SK오션플랜트(옛 삼강엠앤티)는 이 분야의 절대 강자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 대만에선 해상풍력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덴마크 오스테드 등 글로벌 디벨로퍼로부터 “품질과 납기 측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철 제조 기술력도 해상풍력의 핵심 경쟁력이다. 해상풍력용 타워와 하부구조물에는 일반 강판보다 강도가 세고 부식에 강한 ‘해상풍력용 특수 후판’이 들어간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항복강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풍력 타워 1위 기업인 한국 씨에스윈드와 SK오션플랜트 등에 후판을 공급하고 있다. 세아제강은 거대한 기둥 하나를 박는 ‘모노파일’ 방식에서 정평이 나 있다. 영국 법인 세아윈드가 지난달 영국 정부가 발표한 7GW 규모 풍력 차액계약제(CfD) 사업에 파트너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해상풍력의 하부구조물이 고정식 대신 부유식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수심과 상관없이 설치가 가능해 어민들의 민원으로부터 자유롭고, 바람질이 좋아 시장성이 크다는 평가다. 부유식 풍력이 일반화되면 해양플랜트 제작 경험이 풍부한 조선 빅3의 주 무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을 겪는 해상풍력전용설치선(WTIV) 분야에서도 한국 조선업이 해결사가 될 수 있다. 한화오션은 현재 글로벌 시장 주력인 15㎿급 터빈을 5기까지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설치선을 건조 중이다. HD현대중공업도 설치와 유지보수까지 아우르는 해상풍력 EPC(설계·조달·시공) 시장에 진출했다. 터빈 개발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현재 유니슨과 두산에너빌리티가 정부 지원을 받아 10㎿급 실증 및 상용화에 들어갔다.
시장조사기관 우드매켄지는 “2030년까지 각국 정부가 설정한 해상풍력 보급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당장 WTIV, 하부구조물 등 풍력전력기자재에 270억달러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특히 매년 20척 이상의 초대형 WTIV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쇳물(포스코)에서 시작해 용접(SK오션플랜트)을 거쳐 조립(조선사)으로 이어지는 한국 특유의 제조 생태계가 해상풍력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김리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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