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꽃과 선은 무슨 의미일까. 그림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원로 화가 김홍주는 담담하고 집요하게 말한다. “거기에 철학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의미를 강요받는 시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김홍주의 50년 예술 여정을 따라가봤다.

김홍주(83) 화백은 꽃잎을 그리는 작가다. 세필로 점과 색을 쌓아올린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사뭇 다르다. 작가가 세필 노동에 들인 시간이 길어서일까. 보는 이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꽃의 화가’, ‘세필화가’로 알려진 그이지만, 사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험미술에 가까웠다. 서울 대치동 S2A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 표면에 남다>에서는 17점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림 세계가 한 눈에 펼쳐진다.
김홍주 화백의 그림이 전시될 때 가장 낯선 것이 하나 있다. 프레임이 없다. 작업할 때도 캔버스를 팽팽하게 지지해주는 스트레처(나무틀)를 거부하고 바탕 처리가 되지 않은 천 위에 직접 붓을 댄다. 고정되지 않은 캔버스 위를 지나간 세필의 흔적들은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무제’라는 제목을 단 그의 작품들은 지독한 노동의 결과다. 멀리서 보면 풍경이나 꽃처럼 보이는 형상은 한 걸음 다가갈수록 무수한 선의 집합체로 해체되고 다시 만난다. 얇은 천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 수만 번의 붓질, 단순히 대상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세필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수천수만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아는 사라지고 오직 행위만 남는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1970년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창문이나 거울 등 길거리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과 결합한 오브제 작업은 ‘보는 방식’에 대해 작가가 얼마나 깊게 탐구했는지, 그것이 지금의 세필 작업과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다. 정교하게 그린 김홍주 화백의 꽃잎은 꽃의 복사본이 아니라 꽃을 그리던 순간 작가가 머물던 무의식의 궤적이다.
“항상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작업했어요. 작업실이 클 땐 대형 작업을, 작을 땐 소형 그림을요. 달라지지 않은 건 세필화라는 사실뿐이죠.”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원래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뒤늦게 그림에 재능을 발견했다. 교사로 일하며 돈을 모아 홍대 미대에 진학했는데, 당시 박서보 화백이 학교 교수였고 이건용 작가가 동기였다. ST그룹이라는 전위예술 그룹이 결성돼 토론과 전시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땐 개념미술이 큰 흐름이었는데, 새롭다 싶어 도전해보면 다 서양미술에서 이미 한 것이더라고요. 새로운 것을 향한 열망이 컸는데, 어떤 사조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것 위주로, 남들과 다르게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다 보니 청계천 기물을 가져다가 그 위에도 그려보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게 됐습니다.”

작품을 다 보고 다시 입구로 돌아오면 작가가 왜 그토록 ‘의미’를 부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회화란 ‘무엇을 그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남겨지는가’의 문제였다는 걸 알 수 있어서다.
수많은 화가가 심오한 상징을 설명하려 할 때, 김홍주 화백은 표면의 가치를 역설해왔다. 그에게 표면이란 어쩌면 깊이 없는 껍데기가 아니라, 작가의 수행과 감각이 응축된 가장 실존적인 상태이지 않았을까. 회화의 본질은 거창한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붓과 천이 만나는 그 찰나,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는 인간의 의지에 있다는 사실도. 그저 캔버스 위에 남겨진 노장의 정직한 흔적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회복의 감정을 마주할 수 있다. 전시는 3월 14일까지. 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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